본문 : 시도행전 10:34-48절
오늘 본문은 베드로의 설교 내용이다.
설교 서두에 베드로가 언급하는 내용을 보면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라고 시작한다.
사람을 신분이나 혈통 등 외적인 조건으로 판단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달은 베드로는
수십 년 유지했던 선민의식과 편견의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한다.
갈수록 세상은 외형과 조건을 따지고 출신 학교와 지역을 중시하는 경향이다.
외형만 쫓아가는 것이 시대의 흐름이고, 교회마저도 사회적 지위를 묻고 있는 이때에
우리가 진정 돌아봐야 할 대목이다.
우리 안에는 또 다른 이런 편견에 사로잡힌 것이 무엇이 있을까?
요즘 담임목사를 청빙할 때 신학박사 학위를 조건으로 내세우는 교회들의 모습이다.
지난 번 담임목사 청빙할 때 최종 후보자 3인 중에서 박사학위 두명을 탈락시키고
신학박사 학위가 없는 목회자를 담임으로 세웠었다.
청빙 위원들에게 이런 마음을 주셨던 성령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어서 베드로는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이암은 화평의 복음에 대하여 전한다.
하나님이 성령의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기에 예수께서 두루 다니며 선한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이들을 치유하며 자유하게 하실 수 있으셨다.
성령의 사역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고, 그가 주신 능력을 힘입어 선한 일을 행하며,
사망의 문화에 물들고 사탄의 체제에 억압된 이들을 자유하게 하셨다.
이를 위해 교회는 항상 성령 충만해야 하고, 성령 충만을 구해야 한다.
성령 없이 주를 따를 수도, 주의 뜻을 이룰 수도, 주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도 없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다.
그리고 이를 본 제자들이 이 일에 증인이 되게 하셨다.
복음의 증인이란 다름 아닌 예수의 증인이고, 부활의 증인이다.
제자들은 다시 사신 예수께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분이며,
믿는 이들에게 죄 사함을 베푸시는 참 구주임을 증언한다,
교회는 예수와 함께 임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구현하는 제자 공동체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증인 공동체이다.
이를 위해 사람의 숫자가 아니라 변화에, 여건이 아니라 사명에 더욱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오순절 예루살렘의 유대인에게 임한 성령이 고넬료의 집에 모인 이방인들에게도 임했다.
유대인과 이방인,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이 없는 복음의 새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외적인 요건을 요구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특성을 온전히 드러낸 것이다.,
경계 너머에 복음이 있고, 예수님이 계신다.
우리만의 예수가 아니라 그들의 예수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이제 복음이 유대 예루살렘을 넘어 사마리아 그리고 이방인과 이방지역으로
전파되고 확산되어 가는 것을 본다.
이 일에 가장 걸림돌인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제자들의 편견을 깨는 일이었다.
그래서 수제자인 베드로를 들어 이 일을 하고 계신다.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오순절날 자신들에게 임하시던 성령님의 역사를
이방인들에게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것을 직접 현장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는 이제 마음이 열렸다.
그 누구도 성령 하나님의 임재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누가는 그래서 증인으로 욥바에서 제자 몇명이 베드로와 동행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복음은 편견 없이 모두에게 전해져야 한다.
그러나 택정함을 입은 자들은 복읆을 듣고 주게 돌아오지만
유기된 자들은 복음을 들어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누군인지 모르기에 모두에게 복음을 편견 없이 전해야 한다.
성령님
내 안에 있는 모든 편들이 사라지게 도와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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