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예레미야 26장 1-15절
25장은 느부갓네살이 집권한 해인 주전 605년에 이메시지를 전했다.
예언자는 70년 간의 포로 생활이 시작되기 20년 전에 그 일을 예언했다.
26장의 사건은 25장의 사건이 일어나기 전 주전 609-608년에 일어났다.
물질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왕 여호와김은 무고한 백성을 박해하고 죽였다.
26장은 예레미야가 재판을 받게 된 이유이다.
요시야의 아들 여호와김의 시대에 예레미야를 통해 심판을 선언하신다.
우상을 타파하고 백성을 다시 하나님의 길로 인도했던 요시아가 사망하자,
유다 백성은 기다렸다는 듯 다시 부정과 불의로 되돌아갔다.
이렇듯 '죄 죽이는 일'(롬 8:13)에 소흘하면, '죄가 우는 사자같이 '(벧전 5:8) 우리를 삼킬 것이다.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이다.
인간은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악한 생각과 악한 행동을 하게 된다.
죄는 원심력처럼 우리를 죄의 본성으로 돌아가게 한다.
자고로 성인군자는 혼자 있을 때 생각이나 행동이 바른 사람이라고 하지 않던가?
스스로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거룩함을 유지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오직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죄를 죽이며 자신을 지켜야 한다.
예루살렘 백성은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보다 강대국을 의지하며,
이득을 취하느라 안식일을 어기고, 이웃을 속이고 약자를 괴롭히면서도,
성전에서 예배만 드리면 자동적으로 심판이 면제된다고 안위하며 평안을 누렸다.
하나님은 바로 그 성전에서 그들의 평안을 깨뜨리는 불편한 메시지를 감하지 말고 전달하라고 하신다.
우리도 '십자가를 지라'는 불편한 메시지를 온전히 수용하지 못한다면,
십자가를 단지 죄책감 해소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게 될 뿐이다.
예레미야를 통해 줄곧 심판을 선언하셨지만, 백성이 악행에서 돌이키기만 하면
재앙을 내릴 뜻을 돌이키실 생각이시다.
이마음을 헤아려 내 삶에 고쳐야 할 악한 길과 악한 행위는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서면 언제든지 용서하시는 분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성전 이전의 성소였던 실로가 불레셋에게 짖밟혀듯(삼상 4: 3:11)
예루살렘 성전도 파괴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꾸준히 선지자를 보내어 회개를 촉구하셨음에도 백성이 꾸준히 불순종하는 이유가
다름 아닌 성전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성전이 서 있는 한 그 어떤 죄를 지어도 영원한 거라 확신했지만,
순종하지 않고도 영원할 수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는 없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성전불패사상에 빠진 백성들에게 성전 뜰에서 성전의 몰락을 선언한다.
실로는 가나안을 정복한 후 성막을 세운 곳(수 18:1)이었지만,
주전 1050년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곳을 파괴했다.
하나님은 실로가 파괴된 것처럼 성전도 파괴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실로가 무너졌듯 예루살렘 성전도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했어야 했다.
인간들은 신화와 전설을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안전과 평안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있다.
성전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겨야 함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도 하나님이 아닌 교회와 예배당이 신앙생활의 목표가 되어버리지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성 예루살렘이 저줏거리가 되고 성전이 파괴될 것이라고 말하자
제사장과 거짓 예언자들은 격노했다.
백성은 성전을 숭상했고, 이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권력을 안겨 주었다.
성전이 파괴될 것이라는 예레미야의 예언은 그들의 권위를 약화시켰다.
또한 그들의 기득권에 위협이 되는 일이기에 더 발끈하고 제거하려고 했다.
예수님도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괴될 것이라고 예언하심으로써 종교 지도자들을 격노케 했다.(마 24:2)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집을 모독했다며 예레미야를 사형에 처하려 한다.
죄를 죽이라고 했더니 선지자를 죽이려 하는 백성에게 예레미야는 그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사형 선고를 받을 거라고 경고한다.
쓰디쓴 말씀이 내 위선과 거짓을 폭로할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
좋은 약은 입에 쓰고, 좋은 충고는 귀에 거슬린다.
잘못을 지적받을 때 기분이 좋은 일은 아니다. 밝은 표정으로 귀를 기울일 수도 없다.
열린 마음으로 진실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자기에게 듣기 좋은 말을 선호한다.
이는 인간이 죄인이라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자기중심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선 코람데오 자세로
사람들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잘못되었다면,
하나님의 기준에는 얼마나 부족하겠는가 생각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런 쓴 말을 들을 때 회개하고 죄악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서는 것이다.
수없이 반복되는 예레미야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이독경처럼 행동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종교지도자들을 본다.
나는 그렇지 아니한가....
내주 하시는 성령 하나님
온전히 나를 통치하시고 다스려 주셔서, 성령의 충만함으로 살아가게 도와 주소서.
'2024년 영성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레미야의 퍼포먼스 (1) | 2024.07.03 |
---|---|
예레미야의 변호자들 (1) | 2024.07.02 |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 (0) | 2024.06.28 |
아그립바 왕 앞에서의 변론 (0) | 2024.06.25 |
베스도의 고민 (0) | 2024.06.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