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분 : 열왕기하 3:1-12
때는 아합의 다른 아들 여호람이 왕이 된지 12년째 시절이다.
당시 남유다는 여호사밧왕이 18년째 재임중이었다.
북이스라엘은 아합왕 시절에 영적으로는 최악의 시기였지만
정치적으로는 영토를 확장하고 경제적인 부흥과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이었다.
그 아합이 죽고 그의 아들 아하시야도 죽자
식민지였던 모압이 배반을 한 것이다.
그러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게되자 남유다와 협력하여 모압을 공격하고자 한다.
남유다의 속국이었던 에돔과 연합군을 결성하여 에돔 광야길을 통해 모압으로 향한다.
그러나 7일만에 군사와 가축이 물이 고갈되자 당황한다.
여호람은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는도다"하고
여호사밧은 "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하는지라.
그러자 이스라엘 와의 신하들 중의 한 사람이 대답하되
"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사밧이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있도다"
이에 이스라엘 왕과 여호사밧과 에돔 왕이 그에게로 내려가니라.
우리는 항상 비슷한 실수를 하곤한다.
인생을 살면서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기도 한다.
과거 다윗은 전쟁이 나면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을 받고 움직였다.
오늘 세 왕의 모습은 그렇지않다.
하나님의 뜻을 묻지도 안고 출정했다가 난간에 부딪히자
그재서야 선지자를 찾고 하나님을 찾는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고 나의 모습 아니던가?
요호람은 아합과는 달랐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우상숭배, 바알 숭상을 배격하지만 부분적으로만 없앨 뿐이다.
단호하고 세밀하지 못한 회개는 선을 품은 악일 뿐이다.
심하지 않은 죄라고 스스로 위안하며 악의 언저리를 서성거리고 있지는 않는가?
하나님을 배신한 데 대해서는 관대하면서, 모압의 배신에는 단호하게 대처하고 있다.
인간적 손해를 보상받는 데는 재빠르면서, 영적 결핍을 바로잡는 데는 느릿느릿하진 않는가?
여호람의 아버지 아합의 동맹 요청 때와 똑같은 대답을 한 여호사밧은 (왕상 22:4)
이전에는 곧바로 하나님의 뜻을 물었지만 (왕상 22:5),
이번에는 곧바로 인간의 뜻을 고안합니다.
남유다의 속국 에돔의 광야 길을 공격하는 전략을 짭니다.
다 갖추었는데 하나님만 빠진 삶은 아니지 돌아보자.
무 ㄹ없는 상황은 전쟁의 성패를 암시하는 메시지가 아니라,
이 전쟁에서 유일하게 소외된 한 분인 여호와께서
자신의 존재감을 각성시키려고 주신 경고의 나팔이다.
오늘도 내 기대대로 되지 않는 일들은
불길한 징조가 아니라 하나님을 더욱 간절히 찾고 구하는 메시지이다.
성령 하나님
매 순간 매 일들마다 사소한 작은 일들 하나까지도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응답을 기다리게 하소서.
그렇게 훈련되게 도와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