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예레미야 37장 1-10절
시드기야 왕 때 바벨론의 침공에 위협을 느낀 시드기야 왕(요시아의 아들, 여호와 긴의 삼촌)은
사절을 보내 예레미야에게 중보 기도를 요청한다.
급박한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리고 잘못된 신학으로
단순히 위기만을 탈출하기 위하여 행동하는 모습을 본다.
항상 일에 순서가 있다. 회개가 먼저이다. 간구는 그 이후에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폐하여지지 않고, 상황에 변견치 아니하고
예언하신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강조하신다.
왕과 백성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다.
기도만 하면 다 들어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라고,
회개하지 않는 기도도 응답되리라고,
기도만하면 잘 될 것이라고, (낙담론, 헛된 희망)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은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고 ...
애굽이 올라오고 바벨론이 퇴각하는 것을 보니 이제 다 해결되었다고 ..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예언된 말씀대로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니,
착각하지 말라. 오판하지 말라고 경고하신다.
바벨론 군대가 다시 와서 예루살렘 성을 함락시킬 것이라고 ...
사람은 현실적인 상황과 환경, 세속적 가치,인간적인 생각으로 장미빛 희망을 갖기가 싶다.
다 잘될 것이라는 근거없는 희망으로 자신을 위로하며 격려한다.
희망, 꿈을 갖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지만
잘못 판단한 희망은 더 큰 좌절과 절망으로 인도할 것이다.
판단의 기준과 근거에 늘 하나님의 말씀이 제일 우선시 되어야 한다.
그것이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내 삶의 주가 되시고 인도자이심을 인정하며
그분에게 내 삶을 맡겨 드리는 자세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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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대로 (36:31) 바벨론에 의해 유다의 국운이 기울고 있다.
유다 왕이 침략국 바벨론의 총독 신세로 전락하고,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돌이켜야 하는 상황임에도,
왕과 백성은 말씀을 듣지 않는다.
예레미야가 40년 가까이 하나님의 심판을 수용하라고 끊임없이 외쳤지만
유다 왕과 백성은 끝내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말씀을 무시하고 무사한 역사는 없다.
듣지 않음이 멸망을 부른다.
예루살렘 멸망을 선포할 때는 잡아가두더니 말씀이 실현되자 예레미야에게 중재를 요청한다.
불순종으로 나라의 위기를 자초한 자들이 이제는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 하나님'을 찾는다.
하지만 말씀을 듣지 않는 기도는 가증하고,
아쉬울 때만 찾는 하나님은 경외의 대상이 아닌 이용의 대상일 뿐이다.
시온 불패의 거짓 신학도 문제지만, '우리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잘못된 신학은 더 큰 문제이다.
문제가 사라지길 구하기보다 문제의 원인이 나 때문은 아닌지 돌아보는 것이 우선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시드기야가 파견한 두 사절(셀레마의아들 여후갈&마아세야의 아들 제사장 스바냐)을 통해
그에게 전달된다.
하나님은 시드기야의 기대와 달리 애굽의 군대는 돌아가고,
예루살렘은 바벨론 군대에 의해 함락될 것이라고 하신다.
그들의 허망한 낙관론을 철저히 깨뜨리고, 일시적인 호전에 들떠 상황을 오도하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이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오만과 오판은 금물이다.
자신을 기만하는 신앙이나 반성 없는 긍정 신학 역시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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