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영성일기

변심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4. 7. 20. 10:48

본문 : 예레미야 34장 8-22절

 

어제 본문은 시드기야를 향한 마지막 경고였다.

시드기야가 충격을 받았을까? 

하나님 앞에서 계약을 맺고 히브리인 노예들에게 자유를 선포한다.

그러자 바벨론 왕이 잠시 돌아가자 놓아준 노예를 다시 노예로 삼는다.

약속의 기억을 금방 잊어버리고 현실적인 불편함과 경제적 이익을 위해 

하나님과의 계약을 헌신짝처럼 내팽겨처 버린다. 

그러자 예레미야는 이들의 변심에 징계를 분명하게 이행하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인간은 참 간사하다.

'똥 누러갈 때 마음과 똥 누고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는 속담처럼 

다급하고 위급한 상황에서 내뱉는 약속이나 다짐이

문제가 해결되면 금방 잊어버리고 그 약속, 그 다짐을 지키지 못하며 살아간다.,

중한 질병에 걸려 수술 받기 전 마음자세, 결심과 다짐의 정도가

수술 후 다 회복하고 난 후에는 그 다짐의 정도는 금방 약해지고 시간이 더 경과하면 잊고 살아간다.

 

어떻게 하면 그 약속에 신실하고 다짐이나 결심을 잘 지켜나갈 수 있을까?

영원한  숙제이다.

나는 손가락 수술을 받고 감사한 제목 중 하나가 이거였다.

날마다 때마다 손가락을 바라보고 만지작거리면서 그 때 다짐들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늘 마음을 다잡고 살아갈 수 있어서 감사했다. 

 

그래서일까? 난 '신실함'이라는 단어를 정말 좋아한다.

사람을 사귈 때도 그렇다. 변덕스러운 성격보다 한결같은 성격의 소유자를 좋아한다.

그래야 그 사람에게 신뢰와 믿음이 간다. 

나 또한 그런 사람, 그런 삶이기를 바라면서 살아왔다. 

 

신실함의 반대가 변덕스러움이 아닌가

상황이나 환경이 어떠하든지 약속을 목숨처럼 지킨다는 것이 중요하다. 

작은 일이나 큰 일이나 마음과 자세는 같아야 한다.

작은 일이라고 소흘하게 여기거나 약속을 어기는 것은 좋지 않다.

약속을 지킨다는 것이 '관계' 에 있어서 관계유지를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시다. 그리고 그 약속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인간들의 변덕스러움에 오래 참으시고 인내하신 분이시지만 

그 인내도 영원하지는 않다. 그 책임을 물으실 때가 분명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변심, 변절자, 변덕스러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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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마다 노예를 해방하라고 명령하셨다.(출 21:1-11, 신15;12-18)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영원한 노예로 살다가 해방된 민족으로서,

형제자매를 '영원한' 노예로 대우해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에서 노예는 경제적으로 파산한 사람이 다시 자립하기까지의 '일시적' 상태일 뿐이다.

부유한 사회계층의 이득을 위해 인간을 도구화하는 이방 나라의 노예제도와 달리, 경제적 재기를 꿈꾸는 제도이다.

자발적인 결정으로 영원한 노예가 될 수 있음을 율법이 명시할 정도로,

노예가 된 당사자에게 결코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제도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고용된 노동자' 개념의 긍정적인 사회제도였다.

하지만 하나님이 율법을 제정하신 이래, 이스라엘은 이 취지대로 행한 적이 없다.

도리어 이웃 나라들의 노예제도를 모방하여 이웃을 착취하고 차별하였다.

 

나는 눈물 흘리며 주께 자비를 호소하던 그 마음으로 자비가 필요한 사람을 대하고 있는가?

 

바벨론의 침공으로 예루살렘의 패망이 임박한 상황에서,

시드기야 황은 이제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 볼 요망으로 노예해방을 단행한다.

율법을 무시하고 노예를 억압하고 착취하던 백성이,

위기가 닥치자 하나님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예해방을 시행한 것이다.

하지만 바벨론이 애굽이 이스라엘을 돕기 위해 올라온다는 소식을 듣고 잠시 퇴각하고 눈앞의 위기가 해소되자,

풀어줬던 노예를 금세 다시 잡아들여 하나님과의 계약을 깨드린다.

 

어려움을 겪을 때 하나님께 약속했던 것을, 상황이 나아진 지금 잘 지키고 있는가?

 

예루살렘 백성은 노예를 해방하겠다는 서약식을 요란하게 행했다.

성전에서 하나님과의 '계약'을 선언했고, 조각난 송아지 사이로 걸어가는 의식을 행하여

맹세를 깨뜨리면 이 송아지처럼 심판받겠다고 다짐했다.

이것은 저주의 맹세였다. 그것도 성전에서 한 언약이었다. 

이런 거창한 예배가 무색하게 그들은 노예에게 주었던 '자유'를 곧바로 거두어버렸다..

그 변심의 대가로 칼과 기근과 전염병이 '자유'를 얻어 예루살렘을 삼킬 것이다.

'칼과 전염병과 기근'에 의해 죽는 자유다. 

그들은 "온 누리의 기쁨"이기는 커녕, "지상 모든 나라의 혐오 대상" 이 될 것이다.

 

순종 없는 내 삶을 화려한 예배로 가릴 수 없다. 하나님은 속지 않으신다.

형편에 따라 바뀌지 않고 한결같이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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