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영성일기

예레미야의 질문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4. 7. 15. 13:09

본문 : 예레미야 32장 16-44절

1.

언약을 맺으며 주신 은혜로운 약속을 강한 능력으로 지키신다.

아브라함을 비롯한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대로 애굽에 열 재앙을 내려 이스라엘을 구원하셨고,

홍해를 가르는 놀라운 기적을 베풀어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강력한 능력으로 우리와 맺은 언약을 지키시며, 우리에게 약속하신 은혜를 베푸신다.

무엇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를 막을 수 없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언약을 어긴 죄를 강력한 힘으로 심판하신다.

하나님은 언약을 지켜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지만,

이스라엘은 이방의 우상을 숭배하고, 불의한 일을 저지르며,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저벼렸다.

이에 하나님은 갈대아인(바벨론)을 심판의 도구로 삼아 죄악으로 가득한 예루살렘을 파괴하려 하신다.

하나님은 아무리 자기 백성이라 할지라고 그들이 저지른 죄악을 못 본 채하시지 않는다.

우리가 말씀을 어기고 언약을 배신하면 구원으로 경험한 하나님의 강함을 징벌로 경험하게 된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와 공의를 고백한다.

창조의 능력과 지혜로 모든 것을 이루시는 전능자, 수천 대에 걸쳐 은혜를 베푸시지만

행위에 따라 보응하시는 공의의 심판자 하나님을 고백한다.

그런데 그러 하나님을 고백하면서, 예레미야는 슬퍼한다.

이스라엘의 배신과 범죄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 은혜, 공의가,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예레미야가 슬퍼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다.

언약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최종 결론은

심판이 아니라 회복이고, 보응이 아니라 용서이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아직 끝나지 않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기에,

아나돗의 밭을 사라는 명령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의 배신과 범죄보다 크신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알지 못하면, 

우리도 슬픔과 의문에 사로잡힐 수 있다. 

하지만 그 은혜를 알면, 소망과 확신으로 바뀔 것이다.

우리의 악함보다 은혜로우시고, 우리 불성실보다 성실하신 주께 감사하자.

 

오늘 예레미야는 궁금하여 하나님께 질문한다. 

느부갓네살의 공격으로 예루살렘이 포위당하고 성전 뜰에 갇혀 있는 예레미야로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나돗 밭을 사고 증서를 보관하지만

이런 행위가 무슨 의미인지 온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70년 후 포로 귀환을 예언한 사람이다.

그런데 자신의 후손도 없는 예레미야에게 밭을 사라고 하심은 무슨 뜻인가?

밭을 사라고 하시고는 바벨론에게 나라가 멸망하게 하심은 또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살아 생전에 포로 귀환을 보게 하시겠다는 뜻인가?

아니면 일반적인 상거래가 가능한 회복의 때를 의미하는 것인가?

인간은 장래 일을 알 수 없어 궁금해 한다.

머리로 다 이해하지 않더라도 전지전능하시고 역사의 주관자되신 하나님은

우리와 맺은 언약,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기에

그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며 나아가야 한다.  

 

2.

그러자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할 수 없는  일이 있겠느냐"

 

모든 인류를 지으시고 통치하시는 분으로서 능치 못하실 일이 없다,

내 기준으로 하나님의 능력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한계를 정하지 말자.

하나님은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일,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한 일을 해내신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 을 계획하시고 이루신다.

 

바벨론을 통해 예루살렘을 불사름으로 유다와 이스라엘의 죄를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비정하고 가혹하신 분으로 보일 수 있지만, 

징벌을 시행하기까지 하나님은 오래 참으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온 직후부터 우상을 숭배하며 악행을 일삼았고, 

하나님의 진노를 촉발하는 일을 저지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하나님이 참으시는 중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에 우상을 세우고

하나님이 경멸하시는 인신제사까지 저질렀다. 

이스라엘의 지독한 죄악이 하나님의 높디높은 자비의 임계점을 넘어섰기에 

심판을 집행하기로 결정하신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 내내 선지자를 보내어 가르치고 일깨우며 경고하셨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듣지 않았다.

"듣지 않음'이 용서받을 기회를 차버리고 심판을 초래했다.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길에서 엇나가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을 주시며 들으라 하신다.

'들음'이 우리를 바른 길, 곧 구원의 길로 인도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능력과 지원에 힘입어 가나안 땅을 차지했음에도,

금세 하나님을 잊고 우상숭배에 빠져들었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말씀을 굳게 지키는 것은 우리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기에,

이스라엘의 실패를 비난하기보다 그들과 다르지 않은 우리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이 더 지헤롭다.

이미 '선 줄로 생각하지 말고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고전 10;12)

마음으로 원해도 자기 힘만으로는 충성스럽게 살 수 없음을 인정하고,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해야 한다.(마 26:41)

하나님의 자비와 인내를 시험하지 않게 하시고 죄를 속히 돌이키게 하소서.

 

 

3.

불가능한 일을 이루신다.

바벨론 군대에 포위되어 있는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백성은 체념한 채, 예루살렘의 함락과 유다의 멸망을 가다리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은 유다의 귀환과 회복을 예고하신다.

유다 백성에게 분노하셔서 그들을 열강의 포로로 내쫓으셨지만,

다시 돌아와 안전하게 살게 하겠다고 약속하신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사람의 희망이 무용하듯,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 앞에서 사람의 절망도 괜한 일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어떤 불행이나 재난도 복으로 바꾸실 수 있다.

'이제 끝이구나' 하는 순간에 강력한 은혜로 상황을 바꾸실 하나님의 새로운 역사를 기대하자.

 

예루살렘 파괴는 언약 파기로 인한 결과이지만,

하나님은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 말씀하시며 

언약 관계의 재건을 예고하신다.

이스라엘이 언약을 깨뜨렸지만, 하나님은 언약을 끝내실 생각이 없으시다.

그들과 함께하며 '마음과 정성을 다해' 복을 베풀려는 마음이 여전하시다.

그래서 언약이 영원히 깨지지 않도록,

그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한결같은 마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주셔서,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언약에 신실한 사람으로 변화시키실 것이다.

언약을 지키는 데 실패한 이스라엘 백성을 언약을 지킬 수 있는 존재로 새롭게 빚으실 것이다.

이것이 진짜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리스도의 속죄와 성령의 강림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영원히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사람이 되었다.

하나님의 강력한 은혜의 결과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른 삶과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선택이 결코 헛되지 않게 하신다.

나라가 망하는 판에 예레미야가 밭을 산 것은 어리서고 무가치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획하신 유다의 회복을 알려주는 '행동 예언'이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부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추구하며 살면,

하나님은 우리 삶이 예언으로 판명되도록 새 세상을 여실 것이다.

순종하기 위해 좁은 길로 가는 삶은 결코 헛고생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 하나님이 되시려고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답게 빚으시는 능력과 은혜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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