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영성일기

문들이 닫히더라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4. 6. 17. 12:04

본문 : 사도행전 21: 17-36절

 

바울 일행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사도 야고보와 장로들을 모아놓고 그 동안의 사역 보고를 하였다.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바울은 은혜에 의한 구원을, 야고보는 행위에 의한 구원을 가르쳤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같은 믿음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진리와 복음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면 믿음의 다양한 형태를 포용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프랑스의 '톨레랑스'가 떠오른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나타난 것을 알면 율법에 열성을 품은 유대인들이

할례와 율법보다 복음을 강조한 바울에 대해 강한 반감을 표할 것이기 때문에 

바울이 겪을 위험을 예견하고 그들의 비난을 피할 방도를 생각한다.

야고보는 바울에게 나실인으로 서원한 네 사람과 함께 성결 예식을 치르기르 제안하면서

유대인들의 반감을 없애려고 한다.

바울에게는 율법의 행위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는 신념이 있었지만,

복음을 훼손하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복음의 진전을 위해서 야고보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복음의 사람은 신념을 지키는 일과 고집을 부리는 일을 혼동하지 않는다.

신념을 지키되 유연함이 있다.

기독교인들은 독선적이고 편협하며 옹졸하다는 비난을 자주 받는다.

불의와 비진리와 타협하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더불어 살아가면서 우리가 취할 자세는 관용과 아량과 배려와 사랑이어야 한다. 

 

유대인들은 7일간의 성결 예식을 마치기 위하여 성전에 들른 바울을 발견하였다.

바울이 일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와 함께 있던 모습을 떠올리고는, 

이방인을 이방인의 출입이 금지된 성전의 안뜰까지 데리고 들어간 것으로 오해하고 몰아세운다.

기울어진 시각은 사실마저 왜곡한다. 

사정과 사연을 헤아리기보다, 편견과 선입견으로 판단하고 단정 짓기에 급급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한번 삐뚤어진 시각은 만사를 다 그렇게 바라보고 생각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 

선입관은 참 무섭다. 또한 쉽게 고쳐지지도 않는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더한 것 같다.

지역 감정도 그렇고, 서울 사람들이 지방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그렇다.

백인들의 인종차별도, 상류층 사람들의 인식도 여전하다.

 

예상치 못하게 천부장이 나타나 바울을 돕는다.

동포를 우해 예루살렘에 온 바울을 위기에서 구해준 것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이었다.

복음을 위하는 삶에는 항상 위기가 도사리고 있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은혜도 항상 따른다.

 

누가는 왜 바울이 성전을 나가자 문들이 닫혔더라고 기록하였을까?

유대인들을 향한 복음의 문이 닫혔음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일까?

바울의 유대인들을 향한 전도의 문이 닫혔다는 말인가?

 

복음의 문이 닫히기 전에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한다.

은혜의 때에 은혜를 받아야 한다.

나 또한 문이 닫히기 전에 들어가야 한다.

닫힌 문은 쉽게 열리지 않고, 아무도 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문의 기능은 열고 닫히는 데 있다.

왠지 이 문자에 마음이 자꾸만 쏠리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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