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영성일기

온전한 복음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4. 6. 10. 10:20

본문 : 사도행전 18:24- 19:7

 

북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아볼로라고 하는 유대인이 있었다.

그가 언제 에베소에 온 지는 정확하지 않다.

아마도 바울이 에배소를 떠난지 얼마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언변이 좋아 대중 연설을 잘하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고 소개되고 있다.

은사와 설득력을 겸비한 초대교회의 설교자요 변증가였다.

사도행전 18장 25-26절 :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이라고 소개한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정확하게 풀어 이르더라."

 

아볼라는 어디서 예수에 관한 것을 듣고 알게 되었을까? 

그의 설교는 예수님이 구약 약속을 성취하신 것과 세례 요한이 전한 메시지에 기초하였다.

그는 회개하여 예수님을 약속된 메시아로 받아들이라고 촉구햇을 것이다.

회당에서 그을 말을 듣고 있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그를 따로 만나서

모든 일을 새롭게 알려 주었다.

예수님의 삶(성육신과 공생애의 삶)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성령 강림을 말하자

아불로는 구약 성경에 박식했던 그는 성경이 더  분명하게 보였을 것이 틀림없다.

그는 완전한 복음을 알게 된 후 새로운 에너지와 담대함이 넘쳤을것이다.

 

아볼로의 겸손함을 본다. 배움에 대한 열정과 바른 자세가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일게 천막을 만드는 신분이 낮은 부부가 학식있는 자신에게 뭔가를 가르치려는 행동에 

보인 행동은 겸손하고 성숙한 인격을 짐작 할 수 있다. 교만과 자만심은 찾을 수 없다.

기거이 배우려는 자세가 아름답다.

우리는신분여하를 따지지 말고 누군가로 부터 늘 배우려는 겸손하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보인 행동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성숙함이 배어 있다.

회당에서 곧바로 반박하지 않고 조용히 불러 일대일로 만나서 진짝 복음을 전하는 모습이 그렇다.   

말씀 사역자를  향한 사려 깊은 조언과 자기 부족을 인정하는 말씀 사역자의 겸손한 자세가

아름다운 결말을 가져왔고 복음 사역에 힘을 더하게 되었다.                 

이것이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바른 자세와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의 열린 마음이다. 

그의 이런 모습으로 온전한 복음을 접할 수 있었고, 그의 지식과 설교에 담대함을 얻을 수 있었다.

 

아볼로는 아가야로 가서 복음을 전하기 원하였다, 아마도 그는 순회 설교자였던 모양이다.

에배소 친구들은 그를 극찬하는 추천서를 써준다.

이 탁월한 사역 뒤에 교회의 힘찬 응원과 따뜻한 지지가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선교사들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지 돌아보는 본문이다.

말씀 사역자와 선교사들도 공동체의 위로와 격려, 응원이 필요하며,

그를 통해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하고, 능력 있게 말씀을 가르칠 수 있다. 

사람이 누군가로 부터 이런 추천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자랑스런 모습인가?

그는 고린도에서 그리스도인들의 변증 전사가 되어 복음의 대적들과 공개적으로 논쟁했다.

이런 아볼로의 능력 때문에 그를  추종하는 분파가 생겨나 교회에 문제가 되었다.

바울은 이 문제를 지적하였고, 이미 고린도를 떠난 아불로에 대하여는

자신이 고린도에서 뿌린 복음의 씨에 '물을 준' 동료 사역자라며 따뜻하게 썼다.

바울은 생애 후반에 아볼로를 디도에게 소개했다.

여전히 디도 사역을 도와 줄 수 있는 복음의 대변인이었다.

그래서 아볼로의 이런 해박한 성경 지식 때문에

히브리서의 저자가 미상인데 그를 저자로 언급하기도 한다.

 

후반부에는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물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라."

바울이 이르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그들이 믿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되니라.

이들은 바울이 가르친 제자들이 아닐 수 있다.

아마도 아볼로가 가르친 제자들일까? 

누가는 이 두 본문을 이어서 기록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온전한 복음임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바울이 바른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본다.

공동체 안에서도 온전한 복음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도, 복음에 대하여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정확하게 복음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한다면 다시 들어야 한다.

요즘처럼 이단들이 활개치는 혼탁한 세상에서

온전한 복음, 바른 복음을 분별하고 듣고 아는 것이  중요함을 생각한다.

 

성령님이여

늘 온전한 복음을 붙들고 살아가게 하시고, 전하게 하시며

아볼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바울같은 인격과 복음에 대한 지식과 열정이 있게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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