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영성일기

말씀으로 돌아가자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4. 12. 3. 10:59

본문 : 호세아 14장 1-9절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에게 선민의 자라로 돌아올 것을 호소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을 약속하신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우상숭배를 비롯한 각종 죄악으로 물든 이스라엘을 향해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촉구한 호세아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말씀을 가지고" 돌아오라고 선포한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구하시는 것은 제물이 될 짐승이 아니라

오직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다(신 10:12,13).

천천의 숫양도,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미 6:7).

하나님은 말씀에 대한 경청과 순종을 기뻐하신다(삼상 15:22).

하나님께로 돌아가려는 사람은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갖추고 돌아가야 한다.

 

말씀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무엇인가?

지식이 없이 망한다는 말이 성경에 있다.

참 지식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데서 오는 것이리라.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자신을 들어내시고,당신의 생각을 나타내셨기 때문이다.

지금 21세기를 살아가면서 지식의 홍수 시대를 살아 간다. 

지식은 토인비 말처럼 날마다 폭발하고 있다. 

엄청안 지식의 홍수 속에서 내가 붙들어야 할 지식, 참다운 지식

내가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을 지식이 무엇인가?

그것은 생명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데 말씀을 가지고 돌아간다는 것은 또 무슨 뜻일까?

이미 말씀을 가지고 있다는 뜻인데, 말씀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미 주어진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결단의 표시가 아닐까 싶다.

또한 회개가 돌아섬이라고 말한다면, 하나님의 진리,생명의 말씀으로 돌아서는 것이다. 

 

하나님은 완전한 회복자이시다.

호세아의 호소(1-3절)와 같이

이스라엘이 죄악의 길을 떠나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한 진노를 거두고, 이슬처럼 내려 양분이 되겠다고 하신다.

이러한 보살핌을 받는다면 이스라엘은

백합화와 같이 아름다워지고, 백향목과 같이 견고해지며,

감람나무 가지처럼 풍성해지고, 포도나무 꽃처럼 번성하여

다시는 우상을 찾을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될 것이다.

이슬 같은 은혜를 머금은 인생에 꽃이 피고 그 향기가 온 땅에 퍼질 것이다.

뿌리를 뽑힌 나무처럼 되었더라도, 회복 불능의 진단을 받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 앞에 불치병은 없다,

하나님의 회복하심은 부분적이거나, 일시적이지 않다.

전인적으로 치유하시며(출 15:26), 완전히 소생시키신다(시 23:3).

 

그럼으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 복의 근본이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만이 우리의 생사화복을 결정하신다. 

따라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며, 주로 모시며 살아가는냐가 중요하다. 

주님의 주권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온전히 의지하며.

매 순간마다 의심 없이 전적인, 온전한 신뢰를 가지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인간은 연약하여 이 믿음을 끝까지 지키기가 쉽지 않고 어렵지만

다시 일어나 이 길을 걸어가고, 끝까지 걸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말씀은 실천되어야 한다, 호세아는 자신의 예언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음을 간접적으로 알리며 예언을 종결한다.

호세아에 따르면 지혜롭고 총명한 사람은

여호와의 정직한 도를 실천하는 길로 다니는 사람이다.

듣고 마음에 감동을 얻었다고 해도 이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죽은 믿음과 다름없기 때문이다(약 2:17).

하나님의 아름다운 말씀들이 구체적인 실천으로 나타날 때,

비로소 '생명의 말씀'(요 6:63)으로 그 진가가 발휘된다.

내가 묵상한  말씀은 내 삶에서 '생명의 말씀'으로 약동하고 있는가?

 

믿음과 행함은 보트의 양쪽 노와 같고,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양쪽 노를 균형있게 저어야 한다.

동전은 한 면만 있지 않고 양면이 존재한다.

오랜 신앙생활 하면서 머리가 커지고 말만 늘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손과 발은 더디게 움직여 기형적인 지적 비만형 인간의 모습이다.

오죽하면 예수쟁이들은 죽어서 입만 동동 떠있을 것이라는 비난을 받겠는가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일이 많아질수록 영적 성숙과 비례하는 것 아니겠는가. 

수도 없이 행함을 강조하지만 우이독경이다.

절박함이 없다. 간절함이 없다. 긴박함이 없다.

그렇게 하면 좋고 ... 좋긴 한데 ...꼭 그래야 하나 ...

얼마나 자주 그리고 적당히 타협하고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깨달을 것인가? 고난을 만나야 돌아서려는가?

매를 맞아야 정신을 차리려는가?

오늘도 영적 깨어있음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안일하게 살아가는 자신이 한심하다. 

요한계시록 강의가 끝난 것이 몇 주도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성령님 

말씀으로 돌아가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게 도와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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