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아모스 5장 18-27절
교회를 오래 다니다 보면 세상의 불의와 부정직함을 보면서 기도할 때
자주 인용하는 구절이 오늘 아모스의 5장 24절 말씀임을 알게 된다.
"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통로여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여 부르신 이유는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게 하심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단지 개인이 구원받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이 땅에 들어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자신을 통해 마르지 않고 흘러가야 한다.
오늘 말씀을 통해 진지하게 다가오는 구절은
다가오는 하나님의 날,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이
장미 빛, 회복과 구원의 날이 아니라,
캄캄한 심판의 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요한계시록에서 보았듯이 인류역사는
구원과 심판이라는 두 트랙의 결과를 맞이할 것이다.
주님이 오시는 날, 동일한 날이
누구에게는 무서운 심판의 날이 될 것이고
누군가에는 영생을 맛보는 구원의 날이 될 것이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열심히 종교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것으로 생각하는 자들에게 임하는 심판일 것이다.
오늘 본문은 그런 삶을 사는 자들의 이야기이다.
어떤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 다시 점검하는 본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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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절기나 성회 때 드리는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를 받지 않겠다고 하시고,
그들이 부르는 노래도 멈추라고 하신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예배를 통한
인격의 성숙이나 삶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교회밖에서는 사람들의 탄식과 애통하는 소리가 가득한데
교회 안에는 우리만의 흥겨운 노래가 가득한
이율배반적인 신앙의 모습이 있지는 않는가?
하나님을 향한 찬송이 우리만의 것이 되지 않고
우리를 통해 이웃이 부르는 찬송이 될 수 있도록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강같이 흐르게 하자.
마음을 받으신다.
이스라엘이 사십 년 광야를 지날 때 하나님께 드린 예물은
아모스 시대에 드린 예물에 비교할 수 없이 작고 초라하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기뻐하신 예배는
물질이 풍성한 아모스 시대의 예배가 아니라
물질이 없어도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풍성하던 광야 교회 시절의 예배이다.
우리는 그저 보기에 좋은 화려한 의식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며, 그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삶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
아모스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종교적 행위만 열심히 하면
회복과 구원의 여호와의 날을 맞이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삶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채 그럴사한 예배로만 포장한다면,
여호와의 날은 사자를 피하려다 곰을 만난 것 같은 화와 심판의 날이 될 것이다.
우리도 주님의 날,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이
내 삶이 어떠하든 자동적으로 장미빛일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는가?
그날의 구원은 믿는 자의 것이며, 믿음은 하나님의 말슴에 순종하는 삶으로 증명된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다메섹 밖으로 사로잡혀 가는 이스라엘의 손에
여전히 앗수르의 우상인 '식굿'과 '기윤'이 들려 있었다.
포로로 사로잡혀 가면서도 우상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은
그들이 왜 그러한 심판에 이를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려준다.
하나님 밖에는 의지할 이가 없는 상황인데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 우상은 없는가?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우리를 통해 세상으로 흘러갈 수 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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