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글 모음

청출어람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1. 5. 17. 12:18

쪽에서 나온 푸른 물감이  쪽빛 보다 더 푸른색이 나온다'는 말에서 유래한 사자 성어로

보통 제자가 스승보다 실력이 나을 때 사용된다.

 

어제 주일 설교에서는 예수그리스도가 예수살렘에 입성하시기 전 하신 말씀으로  

요한복음 14장 12절에 기록된 말씀이다.

 

예수님 사후에 제자들의 사역이 예수님의 사역보다 더 많았고 범위도 더 넓었다.

그러니 사역적인 면에서는 청출어람이라고 적용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울산신정교회는 골목 안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중소 교회이다.

다음세대의 신앙교육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청소년 사역의 실력자가 담임목사로 사역을 하고 있다.

현재 교회에 속한 다음 세대들을 세상적인 시각으로 바라다보면 출중한 인물들이 배출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학력이나 학교 성적이나 신앙의 모습이나 특출한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내 안에 있는 믿음의 눈으로 보기 보다는 세속적인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는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과연 청출어람, 지금 당회원이나 중직자들 보다 더 믿음이 좋고 신실한 주의 종들이 나올까?

당회원들은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사업가, 변호사, 교사 등등 세상적인 직업도 대형교회에

비교하여 뒤지지 않고, 교회에 헌신적이며 신앙도 신실하다.

 

내 안에 있는 믿음 없는 모습을 발견하고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다.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인들이 베들레헴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는가 하고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또한 제자들의 출신 지역이나, 가문, 학벌, 직업 등을 보며 무시하고 하찮게 여기지 않았던가

그러나 제자들이 보여 준 삶과 사역은 그들의 판단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나 또한 지금 동일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믿음으로 다음 세대들을 바라보기 보다는 세속적인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지 않은가?

기독교 세계관으로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기 보다는, 지금까지 길들여진 세속적인 가치관이 더 크게 작동하고 있다.

과연 나에게 믿음이 있는 것인가?

언행일치가 아닌 언행불일치의 모습이다. 

청출어람을 말하고 기도하고 바라지만, 반신반의 하고 있는 것이 솔직한 모습 아닐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인데, 자신의 지식과 경험과 상황을 가지고 판단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제는 예배하기 전에 마음이 무거웠다. 마음이 무겁고 답답하고 무언가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아마도 정서적으로 건강한 영성이라는 책을 읽고 저자가 관상기도에 대한 강조를 하는 것이 불편했나 보다

지난 2020년 고신 포럼에서는 이 관상기도에 대하여 상당히 비판적인 토론이 있었다.

20세기 들어서 영성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뉴에이지 운동과 카톨릭에서는 강조하는 단어가 되었다.

기독교에서도 영성에 관심을 가지고 중세 수도원의 신비주의와 동양종교의 묵상, 심신 수양 등에 관심을 보이며

침묵 묵상을 통해 정신합일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는 것으로 보고,

타 종교에서 사용하는 방법이나 훈련등을 도입하고 강조하며 교육하고 있는 현실이다.

카톨릭의 영성 훈련과 힌두교나 불교의 정신수양이나 이들이 강조하는 관상기도가 차이점이 없어 보인다.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중요하지 않은 것인가

영성을 위해 타 종교에서 하는 방법들을 동원, 차용, 모방하는 것이 정당한가

출발점이 잘못되어 있는데 성경적이라고 할 수 없는데 받아들여도 괜찮은 것인가?

조태완 목사는 이런 관상기도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있을까?

그가 추천한 도서를 신강식 장로가 구입하고 당회원들에게 선물을 하였다. 당회원들은 이런 내영을 인지하고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온통 마음을 짓눌러 왔다. 

그러나 기도와 찬양을 통해서 그나마 그 악한 유혹을 떨쳐버릴 수 있어서 감사했다.

장로는 교회에 잘못된 것들이 들어오는 것을 알고 경계해야 한다.

 

청출어람.

내 자식이 나보다 나은가? 그렇지 않다면 나는 자식을 잘 가르치지 못한 것이다.

울산 신정교회 다음세대가 우리 세대보다 더 낳지 않으면 다음세대 교육을 바르게 한 것이 아니다.

선한 부담감이 드는 말이었다.

믿음의 기도를 드리면서 믿음의 눈으로 소망한다. 그리고 기대한다.

다음세대가, 황폐한 이 땅에  푸른 의의나무가 되어 이 땅에 가득하기를 ...

 

선물로 받은 우산.

이 우산 안에서 비를 피하듯, 내 믿음의 우산 아래, 나의 삶의 모습 속에서

위로와 힘을 얻는 다음 세대가 있기 위하여

부모가 우리 세대가 어찌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자신의 삶과 신앙을 돌아보는 귀한 말씀이었다.

 

 

-청출어람의 뜻과 유래

푸른 물감은 쪽에서 나왔다. 쪽에서 나온 푸른 물감이 쪽빛보다 더 푸르다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더 나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쪽은 옛날부터 염료 작물로 재배하였는데 잎을 남색의 원료로 이용한다.

'쪽빛'은 쪽에서 얻은 남빛이 아름다워서 생긴 말이다

 

출전

「군자는 말한다. 학문이란 중지할 수 없는 것이다. 푸른색은 쪽에서 취한 것이지만 쪽보다 푸르고, 얼음은 물이 (얼어서)된 것이지만 물보다 차다. 나무가 곧은 것은 먹줄에 부합하기 때문이지만, 구부려 바퀴로 만들면 구부러진 형태가 곡척에 부합한다. 비록 볕에 말리더라도 다시 펴지지 않는 까닭은 구부려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무는 먹줄을 받으면 곧게 되고, 쇠는 숫돌에 갈면 날카로워지는 것이다. 군자는 널리 배우고 날마다 거듭 스스로를 반성하여야 슬기는 밝아지고 행실은 허물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높은 산에 올라가지 않으면 하늘이 높은 줄을 알지 못하고, 깊은 골짜기에 가 보지 않으면 땅이 두터운 줄을 알지 못하는 법이다. 선비는 선왕의 가르침을 공부하지 않으면 학문의 위대함을 알 수 없는 것이다.(君子曰, 學不可以已. 靑取之於藍, 而靑於藍. 冰水爲之, 而寒於水. 木直中繩, 輮以爲輪, 其曲中規, 雖有槁暴, 不復挺者, 輮使之然也. 故木受繩則直, 金就礪則利. 君子博學而日參省乎己, 則智明而行無過矣. 故不登高山, 不知天之高也. 不臨深谿, 不知地之厚也. 不聞先王之遺言, 不知學問之大也.)」

이 말은 《순자(荀子) 〈권학(勸學)〉》에 나오는데, ‘푸른색은 쪽에서 취한 것이지만 쪽보다 푸르다.’는 말에서 ‘청출어람청어람(靑出於藍靑於藍)’이 나왔고, 이것이 다시 ‘청출어람’이 되었다.

‘청출어람’에 대한 예는 다음의 전적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북위(北魏)의 이밀(李謐)은 어려서 공번(孔燔)을 스승으로 삼아 학문에 정진했다. 몇 년이 지나자 이밀의 학문이 스승을 능가하게 되었다. 그러자 공번은 이밀에게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도리어 그를 스승으로 삼기를 청했다. 그러자 동문들이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푸른색은 쪽에서 만들어졌지만 쪽이 푸른색보다 못하다네. 어디 불변 고정의 스승이 있다던가. 경전을 밝히 아는 데 있는 것이지.(靑成藍, 藍謝靑, 師何常, 在明經.)」

이 이야기는 《북사(北史) 〈이밀전(李謐傳)〉》에 나오는데, 이는 ‘배우는 데는 일정한 스승이 없다.’는 뜻의 ‘학무상사(學無常師)’라는 성어와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청출어람’은 다음의 전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부(賦)는 고시(古詩)의 일종이다. 처음에 순경과 송옥에게서 창시되어 점차로 가의와 사마상여에게서 넓어졌다. 얼음이 물에서 나온 것처럼 처음에는 삼분오전(三墳五典, 최초의 전적)에 본을 두었고, 푸른색이 쪽에서 나왔듯이 풍(風)과 아(雅)보다 화려함을 더했다.(賦者, 古詩之流也. 始草創於筍宋, 漸恢張於賈馬. 氷生乎水, 初變本於典墳. 靑出於藍, 復增華於風雅.)」(백거이(白居易) 〈부부(賦賦)〉)

《삼분(三墳)》은 복희(伏羲), 신농(神農), 황제(黃帝)의 책으로, 실전되었다. 《오전(五典)》은 소호(少昊), 전욱(顓頊), 고신(高辛), 요(堯), 순(舜)의 책으로, 역시 실전되었다.

 

용례

제자가 된 자로서 ‘청출어람’하지 못하면 스승에 대한 제자의 예를 다하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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