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영성일기

아! 예루살렘이여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4. 10. 17. 09:22

애가는 '슬프다'의 탄식으로 시작한다.

우리나라 삼일 독립선언문처럼 '오호 통재라!'로 시작한다.

이 한마디가 애가 기록자의 마음을 온전히 대변하고 있다.

 

선지자가 기억하는 예루살렘은 아름답고 위상이 높았으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의 분주한 몸짓으로 늘 활력이 넘치는 성읍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은 황량하고 처참하다.

바벨론에 의해 백성이 포로로 끌려가고 성읍은 파괴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믿었던 동맹국마저 외면했기 때문이다.

'이전'과 '이제'가 어찌나 극명하게 대조되는지, 선지자는 기막힘에 "슬프다"하며 탄식한다.

말씀을 떠나고 하나님을 멀리한 대가는 급작스럽고 급격한 몰락이었다.

 

바벨론의 공격 앞에서 예루살렘이 허망하게 무너졌다.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혀가는데 백성은 속수무책이고,

백성이 대적의 손에 넘어지는데 지도자들은 도망치기 바빴다.

예루살렘이 적들 앞에서 이토록 무력한 까닭은

그들이 '죄를 많이 지었고', '크게 범죄함으로', '삶을 더렵혔기'때문이다.

더 강해지고 더 행복해지려고 선택한 죄 때문에 더없이 약해지고 비참해진 것이다.

 

멸망한 예루살렘 같은 처지에 있을 때,

"나의 환난을 감찰하서서", "나를 돌보시옵소서" 하며 하나님께 호소해야 한다.

우리 희망이 하나님에게만 있고, 우리 회복이 하나님에게서만 오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멀어졌을 때 더욱 하나님을 간절히 불러야 한다.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성전이 있는 한 예루살렘은 절대 멸망하지 않는다'는

소위 '성전 불패 사상'이 있었고,

이 신앙 때문에 이웃을 억압하고 우상을 숭배하면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신념과 달리, 하나님은 성전을 바벨론의 손에 넘기셨다.

그 어떤 종교 의식도 순종과 거룩한 삶을 대신하진 못한다.,

 

예루살렘이 쌓은 죄를 돌이키지 않자,

그들을 보호하시던 하나님이 그들을 징벌하시고

그들의 영광이시던 하나님이 그들을 떠나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무조건 보호하시는 분이 아니라

보호를 철회하면서도 정의롭고 거룩하게 훈육하시는 분이시다. 

 

징계를 받기 전에 죄를 멀리하게 하시고, 죄를 지었다면 진심으로 슬퍼하게 하소서.

 

지혜가 어디에 있는가? 명철이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따라사는 길임을

수도 없이 반복하며 말씀하시고 가르쳐주시지지만

그러나 연약한 인간은 늘 실수하고 범죄하며 하나님과 멀어지려고 한다.

어쩔수 없는 인간의 죄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바울의 고백처럼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과 몸은 세상을 향하고 있다.

일평생 끝없는 영적 싸움의 연속이다. 

육신의 장막을 벗어나는 날, 이 모든 싸움은 끝이 날 것이다.

 

성령이여 도와주소서.

연약한 인생이 이 믿음의 순례길을 잘 걸어가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날마다 매 순간마다 수없이 밀려드는 죄들로 부터 나를 지켜 주소서.

죄를 멀리하게 도와 주시고, 지은 죄를 빨리 깨닫고 회개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순결하고 거룩한 신부가 되도록 도와주소서.

마지막날 '슬프다'라는 탄식으로 생을 마감하지 않게 하시고,

사랑하는 주님을 만나는 설레임 때문에 '기쁘다' 노래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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