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영성일기

유다의 종말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4. 10. 15. 10:32

본문 : 열왕기하 24장 8절 ~ 25장 7절

 

요시아 - 여호와하스 -여호와김 - 여호와 긴- 시드기야

 

여호와긴은 18세에 왕위에 올라 3개월을 다스렸다. 

아버지 여호와김의 길을 따라 가다가

바벨론 느부갓네살 신복들의 침략으로 성이 포위되고

느부갓네살 왕(즉위 8년째)이 성에 도착하자 그에게 나아가 항복한다.

느부갓네살은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보물과 왕궁 보물을 가져가고

솔로몬이 만든 것 여호와의 성전의 금 그릇을 다 파괴했다.

또 예루살렘의 모든 백성과 모든 지도자와 모든 용사 만 명과 모든 장인과 대장장이를 사로잡아 갔다.

비천한 자 외에는 그 땅에 남은 자가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호와긴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용사 칠천 명과 장인과 대장장이 천 명

곧 용감하여 사울을 할 만한 모든 자들을 바벨론으로 사로잡아 가고

여호와긴의 숙부 맛다니야를 시드기야로 개명하고 왕으로 세웠다.  

 

시드기야는 21세에 왕이 되었다. 11년 동안 다스렸다. 

여호와김의 모든 악한 길을 그대로 따라갔다. 

시드기야가 바벨론을 배반하자 시드기야  9년 열째 달 십일에 바벨론 느부갓네살이 처들어왔다. 

시드기야 11년 넷째 달 구일까지 버티다가 성내 기근이 심하여 양식이 떨어지자

왕과 부하들이 아라바 길로 도망하다가 여리고 평지에서 붙잡혀 리블라에 있던 느부갓네살에게 데려간다.

자신의 아들들이 죽는 것을 지켜 보았고 그의 두 눈은 뽑힌채 결박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잘못을 돌이킬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유다를 단번에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바벨론에게 포위되고 백성이 포로로 잡혀가는 일을 경험하게 하시면서

유다가 돌이키길 바라셨다. 

그런데도 유다가 돌이키지 않자, 시드기야 11년에 완전히 멸망하게 하셨다.

하나님이 반복적으로 마음을 두드리는 죄가 있는가?

요즘 내가 반복해서 짓는 죄가 무엇인가? 양심에 자꾸 거슬리는 것이 무엇인가?

성령께서 깨닫도록 신호를 주시는 것이 무엇인가?  

지혜로운 것은 성령의 음성을 빨리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리고 속히 되돌아서는 것이 지혜이다. 매를 덜 맞는 방법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용서의 기회를 거부하면 엄한 징계를 피할 수 없다. 

시드기야가 아직 나이가 어린 탓으로 사리판단을 하지못한 것이었을까?

내가 20대 초반의 왕이라면 이 엄청난 중압감과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었을까? 

일말의 측은함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죄는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늘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죄에 대한 민감함이 있어야 하는데, 결국은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깨닫은 후에는 과감하게 죄에서 돌이키는 결단성이 필요하다.

때가 중요하다. 주어진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돌아서야 할 때 돌아서야 한다.

미적거리다가는 늪에 빠지는 것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침몰하고 만다. 

 

유다에 선지자가 경고한 심판의 날이 이르렀다. 

다윗 언약과 성전이 영원하리라는 백성의 기대를 꺾는 파멸의 날이다.

어린 여호와긴 앙과 그의 신하들은 순순히 항복하고, 성전의 보물을 다 내주었다. 

예루살렘 백성 가운데 비천한 자들을 제외하고는 남은 자 없이 모두 포로로 잡혀갔다.

바벨론은 특히 군인이 될 만한 자들을 잡아감으로써 유다를 완전히 무력화시켰다,

이 순간 유다 백성에게 필요한 자세는 수용이다.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기며 한탄하기보다 내 죄가 자초한 결과요

하나님의 징계가 시작된 것으로 여기며 감당하는 태도이다.

죄를 짓고도 그 결과를 감당하지 않으려는 무책임한 태도를 버려야 한다.

사람이 살면서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모습이 중요하다.

변명하거나 회피하거나 남의 탓으로 돌리는 무책임한 사람은 신뢰할 수 없다.

내가 지은 잘못으로 인한 결과가 어떠하든지 거기에 합당한 책임을 감당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이다. 

 

시드기야는 바벨론에 항복하여 바벨론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예레미야의 경고를 듣지 않고 바벨론에 반기를 든다.

이 일로 예루살렘은 바벨론 군대에 포위되어 1년 6개월 동안 기근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다가 함락된다. 

시드기야는 자기 눈앞에서 두 아들이 청형당하는 것을 보고 난 후에 두 눈이 뽑히고 바벨론으로 끌려간다.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참극은 그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약자를 괴롭힌 죄 때문에,

죄에서 돌이키라는 경고를 흘려들은 안일함 때문에,

바벨론을 섬기며 하나님의 징계를 달게 받으라는 말씀을 듣지 않고,

바벨론을 배신한 자만과 어리석음 때문에 일어났다.

유다가 심판을 자초한 일련의 과정이 우리에게는 없는지 돌아보자.

죄의 결과는 참으로 참혹하고 죄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도 매우 엄혹하기에 죄 문제는 대강 다룰 수 없다.

 

한 나라의 멸망이 한 순간의 판단의 실수 때문이 아니다.

오랫동안 누적된 죄 때문이다.

돌이킬 기회를  잡지 못한 어리석음과 안일함 때문이다.  

한 나라의 멸망과 한 개인의 삶도 동일하지 않을까 싶다. 

평소의 가치관이나 삶의 태도가 어떤 결정에 영향을 준 것이지

한 순간의 판단만으로 엄청난 결과가 초래되지는 않는 것 같다. 

단순히 죄를 멀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은 죄에 대한 회개와 돌이킴 또한 중요하다. 

이미와 아직 사이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연약함 때문에

죄라는 문제에서 자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깨어 있는 영성과 성령의 충만 그리고 말씀으로 무장해야 한다.

그래야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죄 문제에 대처할 수 있다. 

 

성령님 !

죄에서 돌이키고 죄를 멀리하여 말씀에 순종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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