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누가복음 6장 27-38절
예수님은 산상보훈을 전파하시면서 사랑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상식을 뛰어넘는 사랑, 죄인을 넘어서는 사랑, 상 받는 사랑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세상이 말하는 사랑과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사랑은 구분되어야 하고, 차원을 넘어서야 하는 사랑이다.
그동안 유대인들이 알고 있었던 사랑에 대한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상식과 통념을 뛰어넘는 천국 시민의 사랑과 윤리기준을 제시하신다.
우리 하나님이 자비로운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으로 대하신다.
본문이 "그러나'라는 역접 접속사로 시작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조금 전에 화를 선언한 사람들에게조차 사랑하라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을 핍박하여 스스로 화를 자처하는 사람들이지만,
이들에게 줄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가장 완전한 대응은 사랑과 축복이다.
부당한 처사에 대해 상식을 뛰어넘는 반응을 요청하신다.
부당한 처사에 대한 같은 방식의 보복이나 대갚음은 악순환을 가져올 뿐이다.
예수님은 악이 그치고 선으로 충만한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신다.
그래서 새로운 세상을 이루도록 제자들에게 상식을 뛰어넘는 희생을 요청하셨다.
하늘 시민의 특권은 이처럼 세상의 문법에 얽매이지 않고 살 수 있는 자유이다.
나는 부당한 상황에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한 일을 도모하라"(롬 12:17)는
바울의 권면처럼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사람인가?
성도의 모델은 하나님이다.
성도가 선을 행하는 기준이 세상과 같다면 칭찬받을 것이 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애게 "아버지의 자비로우심같이 자비로운 자가 되라"고 일러주신다.
예수님은 우리를 매우 고귀한 존재로 여기신다.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창 1:26)으로,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으로 보신다.
나는 내 기준의 선행에 안주하고 있는가?
우리가 넘어어샤 할 대상은 세상이 아니라 세상의 기준에 갇힌 나 자신이다.
용서와 용납이 하나님 나라의 윤리 기준이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잣대로 비판하고 정죄하면 죄를 없앨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비판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무결한 사람이 없고,
죄를 판단하는 자신들도 죄에 물든 자들일 뿐이다.
예수님이 제시하는 세상은 죄를 짓지 않아서 죄가 없는 세상이 아니라,
서로 용서하고 용납하여 죄를 덮어주는 세상이다.
나는 무결한 사람인 듯 정죄하고 비판하는 일에 능숙한가?
아니면 용서하고 용납하는 일에 마음을 기울이는가?
상식의 수준을 넘는 사랑에 도전하며, 하나님처럼 자비로운 자가 되게 하소서.
수없이 들어온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랑의 방법에 동의는 하지만
실제 삶으로 그사랑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왜 그럴까?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또한 자존심이 있다.
자신을 지키려는 보호 본능이 있고, 손해보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동물이다.
여기에 공격을 받거나 상처를 받으면 자신을 지키고 되값아 주려는 경향이 강화된다.
그런 죄성을 가진 인간이기에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가 힘이 든다.
세상의 사랑이 본능적이라면, 예수님의 사랑은 이성적이라고나 할까?
적절한 표현은 아니지만 세상적 사랑의 기준을 뛰어넘어야 하는 것이기에
의지적 노력이 동반되지 않으면 쉽지 않다.
그러나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도 안다.
나는 죽고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만이 가능하다.
우리는 하나님이 택하신 자녀들이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라면,
거기에 합당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합당하다.
따라서 사랑의 방식도 천국시민의 사랑의 방식을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과 세상이 가르쳐준 사랑의 방법을 내려놓고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사랑의 방법으로 사랑의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인간의 의지와 결단만으로는 결코 쉽지 않다.
성령의 도움으로 새사람이 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믿음의 결단 없이는 힘들다.
믿음도 행함이 있어야 온전한 믿음이 되듯이
사랑도 말로만이 아닌 실천하는 사랑이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날마다 때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삶으로 성장하고 성숙해지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여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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