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영성일기

천국시민으로 산다는 것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5. 2. 25. 09:52

본문 ; 누가복음 6장 39-49

 

예수님은 산상수훈 이후에

천국시민이 된다는 것, 그리고 천국시민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말씀하여 주셨다.

비판에 대한 교훈, 좋은 나무와 못된 나무의 교훈, 그리고 행함의 중요성을 말씀하신다.,

 

--- 김 진웅 목사의 묵상 옮김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택하신 후에 특별히 주신 말씀이 산상수훈입니다.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3단계로 교훈을 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차례대로 기록한(1:3) 누가복음에 이것이 가장 잘 드러나 있네요.

첫째는 어떤 사람이 복을 받게 되는가에 대한 교훈입니다(6:20-26). 

천국 백성의 자질 혹은 특질에 대한 말씀입니다. 자세 또는 태도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천국 백성이 되는 복을 받으려면, 어떤 마음 자세가 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가난하고 애통하는 마음입니다. 주리고 목마른 마음입니다.

둘째는 천국 백성의 윤리 강령에 대한 교훈입니다(6:27-38). 

천국 백성이 지켜야 할 계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 계명의 기본 정신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천국 백성으로 대접을 받는다는 것, 천국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천국의 법, 천국의 계명, 천국의 윤리를 받아들이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천국의 윤리, 천국의 법은 하나님의 법, 은혜의 법, 사랑의 법입니다.

이 법, 이 계명을 지킬 수 없다면,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없습니다.

누가 이 계명을 지킬 수 있습니까? 

절망하며 애통하는 제자들에게 세 번째 교훈을 주십니다(6:39-49). 

천국 백성의 훈련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훈련에 대해서 또 세 부분으로 나누어 말씀하셨네요.

(39-42) 훈련의 시작은 자신의 현재 수준을 정확히 인지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지금 상태는 맹인과 같은 상태입니다. 

사도의 사명은커녕 본인도 천국 백성이 될 수 없는 수준입니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먼저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야 합니다.

(43-45) 훈련의 우선순위를 가르치십니다.

먼저 마음에 선을 쌓아야 합니다.

그다음 선한 행위를 연습합니다.

좋은 나무가 먼저요, 좋은 열매는 그다음입니다.

급하게 좋은 열매부터 만들어내어 자랑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46-49) 훈련의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방법은 훈련의 우선순위와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것도 또 세 가지로 구분해 주셨습니다.

'첫째 예수님께 나아올 것

 둘째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것

 셋째 들은 것을 몸으로 행할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은, 예수님을 진실되게 주인으로 모시는 믿음을 말합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것은 사절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한 믿음이 자라고 확고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믿음이 자랍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 예수님을 더 잘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알면 알수록 신뢰하게 되는 분입니다.

믿음은 마음의 작용이지만, 몸으로 확인할 때에 온전하게 됩니다. 

정말 믿었는지 몸으로 확인함으로써 믿음이 확증됩니다. 

만약 몸으로 확증되지 않으면, 아직 정말로 믿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여야 합니다(46절). 

그래서 이전 단계로 돌아가야 합니다. 

행위가 온전치 못하다고 해서 행위를 계속 훈련하면 안 됩니다. 

행위는 믿음 자체가 아니라 믿음의 검증 수단입니다.

중요한 것은 위 세 가지를 차근차근 다져가면서 차례로 밟아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이는 성과를 성급하게 내려는 시도들은 모두 다 실패합니다.

 마음의 밑바닥, 무의식의 세계에까지 하나님의 말씀이 침투되어 쌓이도록 해야 합니다. 

마치 집을 지을 때 땅 위에 바로 집을 지으면 안 되는 것과 같습니다. 

먼저 반석에 이르도록 깊이 파야 합니다. 

자신을 의지하고 주장하던 마음을 깨뜨리고 

오직 반석이신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하는 기초 믿음을 붙잡아야 합니다. 

반석을 찾았다고 바로 그 위에 집을 짓는 것이 아닙니다. 

반석 위에 기초를 놓아야 합니다

반석 위에 믿음을, 반석과 일체가 된 믿음을 단단하게 쌓아 올려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집을 짓습니다

믿음의 열매, 믿음의 행위로 믿음을 실체화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확증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너무나 성급한 것입니다. 너무나 걱정이 많은 것입니다. 

내가 다 하려는 것, 내가 주인 노릇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세상의 죄는 하나님께서 해결하십니다. 

세상의 죄를 해결하기 전에 내가 해야 할 것은, 먼저 내 마음의 기초를 바꾸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말씀을 마음에 차곡차곡 쌓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열매를 맺겠다고 나서면,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형제의 눈에 티를 뽑겠다고 나서는 바보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십니다.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도 다 세신 바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이, 환경이 우리를 해치는 것에 대해서 너무 염려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행복과 우리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너무 애쓰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그보다 먼저 우리 자신의 죄 문제 해결을 위해,

믿음 세우는 것에 우리는 더 집중해야 합니다. 

세상의 일에 무관심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선순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우주를 다스리는 왕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을 외면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그 전에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내 마음의 반석 위에 주추를 단단히 놓는 것입니다. 

 

아멘!

 

39-42절 

비판보다 성찰이 먼저라고 말씀하신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없고, 그릇된 선생 아래에서 온전한 제자가 나올 수 없다.

바리새인들은 남을 가르치려 들었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먼저 보라고 하신다.

믿음은 남이 아닌 자기 내면을 향해 손가락질을 할 수 있는 용기이다. 

오늘 믿음의 눈으로 가다듬어야 할 내 모습은 무엇인가?

 

43-45절

좋은 열매의 근원은 좋은 나무이다.

원인에서 결과를 예상하듯이,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한 선제 조건은 좋은 나무가 되는 것이다.

스스로 좋은 나무가 될 수 없다면 좋은 나무에 접붙으면 된다.

내일 선한 열매를 풍성히 맺으려면, 오늘 선한 나무이신 예수님께 온전히 붙어 있어야 한다(요 15;5)

세상의 기준과 방법을 흠모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선택하고 있는가?

 

46절

행함 없는 고백을 책망하신다.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는 "주여 주여"외치는 일에는 열심이었지만,

말씀대로 사는 일에는 머뭇거렸다.

그래서 예수님은 단순히 '주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믿음의 전부가 아님을 강조하시고,

행함으로 드러나는 삶의 고백을 요구하신다.

야고보 사도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약 2:17)이라고 했듯이,

입술로만 주님을 인정하는 것은 위선이요, 거짓 믿음입니다.

작은 일이라도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까?

 

47-49절

고난을 견디는 믿음은 순종에서 나온다.

말씀을 듣는 데서 그친 사람과 말씀을 듣고 행한 사람은 겉으로는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홍수가 나면 각각의 실체와 차이가 여실히 드러날 것이다.

인생에서 홍수를 맞지 않을 보장이 없다면, 고난을 준비하며 순종을 연습하는 것이 

반석 위에 주추를 놓는 지혜로운 길(마 7:24)이다.

집의 기초가 튼튼하며 수비게 무너지지 않는 것처럼,

자신을 고난으로부터 지키는 믿음은 말씀을 듣는 귀를 넘어,

손과 발의 순종으로 다진 기초에서 비롯된다.

 

말씀에서 순종하는 사람으로 견고한 인생의 기본기를 갖추게 하소서.

 

천국시민으로 산다는 것은 세상적인 방법으로 사는 것과 구별되는 삶이다.

삶의 가치와 목표가 다른 삶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과 생각도 달라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자신이 깨닫고 믿는 것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시고 산상수훈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로 산다는 것을 가르치신다.

예수님을 만나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고 믿었다면,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중요한 것은 믿는 것을 행함으로 자신의 믿음을 확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확증된 믿음만이 최종적인 구원의 자리,

성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 더불어 영원히 살아가는 길이다.

 

그런데 우리 삶의 모습은 구별됨이 확실하지 않고 선명하지 않다.

종교적 혼합주의에 빠져 세상에 양다리를 걸치고 살다보니

매 순간마다 우선순위가 달라지고 흔들리며 넘어지고 만다.

홍수(고난)는 매 순간 여러가지 모습으로 우리에게 밀어닥친다. 

말씀의 반석위에 어떤 지진과 풍랑과 홍수에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주춧돌을 놓아야 한다.

내진 설계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증거)로만 가능하다.

그렇다고 자신의 힘과 능력만으로는 어렵다. 날마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수많은 홍수들을 견디고 넘다보면 

더 큰 홍수를 만나도 견디고 이겨낼 수있는 믿음이 생긴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함으로,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고 믿음의 순례길을 걸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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