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영성일기

이 사람이 누구인가?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5. 3. 5. 09:39

본문 : 누가복음 9장 1-7절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고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보내신지라.

더불어 전도 여행 수칙을 일러 주시고 파송하신다.

제자들이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분봉 왕 헤롯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당황하니 이 사람이 누군가 하더라

 

시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이 행한 사역을 보고하자 제자들을 데리고 벳세다로 가셨다.

따라온 무리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가르쳐주시고 병을 고치신다.

저물매 먹을 것이 없자 떡 다섯 개와 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축사하시고 오천 명을 먹이신다.

 

열두 제자의 전도 사역을 위한 파송과 오병이어의 기적  두 본문 사이에

쌩뚱맞게 헤롯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다.

"제자들에게 귀신을 제어하고 병을 고치는 능력을 주실 수 있는 분,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가르쳐주시는 분

떡 다섯 개와 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열두 바구니에 남을 만큼 기적을 베푸시는 분..."

 "이 사람이 누군가?" 라고 하고 보고자 하였다.

왜? 단순한 궁금증이었을까? 두려움이었을까? 존경심이었을까?

 

나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으로 다가오는가?

내 생명을 구원하여 주신 은인,

내 삶을 송두리채 바쳐 섬길 분

평생을 그분의 가신 길을 뒤따라가고 싶은 분이다.

아니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구원자이시며 나의 주가 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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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자신의 사역을 열두 제자들에게 위임하신다.

그것을 감당할 만한 능력과 권세도 주신다.

그렇게 자신이 떠날 때를 준비하신다.

예수님이 떠나시더라도 하나님 나라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 사역을 지금은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진 교회에 맡기셨다.

교회의 사명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그 나라의 권능과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 교회를 통해서 생명이 어둠을 이기고, 의가 악을 이기고, 소망이 절망을 이기고 있는가?

 

전도 여행을 떠날 때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마저 챙기지 말라고 하신다.

누군가 영접하면 거기 거하고 거절하면 떠나라고 하신다.

복음이 거절당하고 조롱당하는데 전도자가 배부르게 대접받으려 해서는 안 되고,

전도자의 참된 기쁨과 위로는 오로지 복음이 환영받고,

하나님 나라가 힘 있게 진행되는 것을 보는 것뿐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잘되는 것보다, 복음이 세상에서 대접을 받기를 먼저 바라고 있는가?

 

빈 들을 마치 잔칫상처럼 대하시며, 손님을 앉히듯 백성을 앉히시고

잔치의 주인이 축사하듯 축제를 위한 감사기도를 올리시더니,

광야에서 천국의 식탁을 누리게 하신다.

오병이어 기적은 생명의 양식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영적인 살과 피가 되심을 오감으로 체험하는 잔치이다.

지금도 주님은 매일 말씀의 성찬을 우리 앞에 차려주심으로 이 천국의 식탁을 이어가고 계신다.

말씀을 먹음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떼어 나누어주신 떡과 물고기를 우리 마음과 삶에 담고,

천국에서 누릴 진정한 배부름을 소망할 수 있다.

 

자기 탐욕을 위해 요한을 참수한 헤롯에게 제자들의 생명과 치유의 사역은

복음이 아니라 위협이요, 두려움일 뿐이다.

"이 사람이 누군가?" 하는 물음은 거룩한 갈망이 아니라 겁에 질린 독백에 불과하다.

내 나라를 버리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의 소식이 기쁜 소식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살게 하시고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은혜만 의지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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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해라] ...김 진웅 목사

열두 제자로 시작해서 열두 바구니로 끝나는 말씀이네요.

예수님의 사역이 열둘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열둘은 열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열두 제자가 나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했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하나 가지고 나갔습니다. 

열두 제자가 오천 명에게 나누어 주었지만,

예수님께서 축사하시고 떼어 주신 것을 받아서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갈 때, 예수님께서 주신 것으로 나눌 때,

능력과 권위가 나타납니다.

헤롯은 이것을 아는데, 정작 제자들은 모릅니다.

헤롯은 열둘이 한 일을 하나가 한 일이라고 인식하는데,

예수님께로부터 “너희 열둘이 먹을 것을 주라”고 명령받은 제자들은

자기들이 해야 되는 줄로 알고 못 하겠다고 합니다.

햇병아리들을 전도 여행에 내보낼 때 분명히 가르치셨습니다.

 ‘여행을 위하여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 ...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명령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너희가 하는 것 아니고 내가 하는 거다. 

너희가 가는 것 아니고 내가 가는 것이다.

너희를 거절하는 것은 사실 나를 거절하는 것이다.

그런 자들에게는 발의 먼지를 떨어 버려, 나를 거절했다는 증거를 삼아라.”

이렇게 분명히 말씀하셨음에도 못 알아먹었습니다.

전도 여행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고도,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제자들은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로 응수합니다.

헤롯은 제자들이 한 일을 예수님이 한 일로 받아들이는데,

제자들은 자기들에게 하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명령을

자기 힘으로 해내야 하는 명령으로 받아들입니다.

누가 더 믿음이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을 끝까지 부려 먹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에서 예수님이 하신 일은,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신 것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을 앉히고, 떡을 떼어 나누어 주는 일은 모두 제자들이 했습니다. 

예수님은 남은 조각의 처리까지도 제자들에게 다 맡기십니다.

제자들은 스스로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라고. 

할 수 없다는 자들을 굳이 밀고 끌어서 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왜 하나님은 꼭 우리를 통해서 구원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것일까요? 

천사를 시키든지, 자기가 직접 해 버리시는 게 훨씬 속 편할 텐데...

그렇게 해야 우리가 천국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고백함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은 “너희가 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들아” 이렇게 칭찬해주시는 관계가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 사이가 서로 데면데면하지 않고 서로 아끼고 감사하는 관계가 됩니다.

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과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어 주시기 위해

이렇게 꼭 “너희가 해라”고 하십니다.

이것을 오해하여 내가 해야 하는 줄 알고 ‘할 수 없다’고 하거나

내가 한 줄 알고 교만해지는 바보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은 우리는 한 것이 없고, 하나님이 다 하셨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 믿음에 하나님은 상급을 주십니다. 칭찬을 하십니다.

[누가복음 17: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무관심해서도 안 되고 주인행세 해서도 안 됩니다. 

무익한 종으로 충성해야 합니다. 

그럴 때 종들 사이에도 시기와 질투가 없는, 온전한 하나 됨이 이루어집니다. 

자랑질하지 않는 사랑의 공동체가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만 부려먹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으십니다. 

남은 조각 12 바구니를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다시 나누어 주어야 하는 일이 남았습니다. 

우리에게 생명 주심을, 그것을 위해 주께서 죽으셨음을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 전해야 하는 사명이 교회를 통해 우리에게로 물려졌습니다. 

나누어 주고 또 나누어 주어도 떨어지지 않는 떡, 

12바구니에 차게 거둔 남은 생명의 떡을 계속 나누고 또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남은 조각 12 바구니를 거두신 것은 이 일에 우리도 참여하라는 명령입니다.

하다가 잘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를 영접하지 않는 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상했던 자들이 아니고 전혀 예상밖의 반대와 장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때는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고 그 사람을 내버려두라고 하셨습니다. 

뒤처리는 주 예수님께서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자기 동족을 구원하고 싶은 열망이 너무나 커서 이렇게까지 말하였습니다.

[롬 9: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그러나 동족 유대인이 명백히 복음을 거부할 때

주 예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여 발에 먼지를 떨어버리고 그들을 떠났습니다.

[행 13:51] 두 사람이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

주님께서 자꾸 “이제 니가 해라”고 말씀하시는 뜻을 잘 알아들어야 합니다. 

진짜 내가 해야 되는 줄 착각하여 못한다고도 하지 말고, 

진짜 내가 한 줄로 알고 우쭐대지도 말아야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