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아가 1장 1절 -2장 7절
솔로몬의 '아가'라로 시작한다.
아가서는 절기에 불려졌고, 성인이 되어야 읽도록 제한된 성경이기도 하다.
현대 기독교인들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구약 성경이지만
유대인들은 절기에 부를 정도로 소중하게 여겼던 사랑 노래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의 고백이다.
새벽 제단을 쌓으며 많이도 울었다.
지금도 또 울것만 같다.
나이가 들수록 눈물이 헤퍼지는지 자꾸만 운다.
오늘도 솔로몬이 사랑하는 술람미 여인이 아니라
호세아의 아내 고멜이어서 운다.
오늘도 세리의 기도 밖에 할 수 없어서 운다.
12년 전 울산 신정예배당으로 올 때를 생각하며 운다.
아무리 외쳐도 새벽 제단에 나와서 기도하는 중직자는 보이지 않는다.
이런 공동체 만들고자 12년 동안 수고한 것은 아닌데 ...
안타가워 운다.
죽어가던 교회를 다시 소생케 허락하셨건만
또 따시 하나님의 근심거리, 가슴을 아프게한 공동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슬프다. 장로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이번에도 어떻게든 문제가 해결되고 넘어가리라 생각한다.
포도원에서 일하고 양을 치면서 검게 그을린 피부지만
포도주보다 나은 사랑 때문에 입맞추기를 원하는 술람미 여인이다.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사랑을 생각하며
자신이 한심하고 부끄럽고 창피하고 뵐 면목이 없어서 운다.
난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생각한다.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에 감격하여 운다.
입술의 고백에 얼마나 마음을 담아 고백하는지 자신을 돌아 본다.
사랑한다는 백 번의 말보다 십자가를 몸소 짊어지고 죽으신 예수의 사랑 때문에 운다.
난 이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사모하고 고대하며 갈망하는지 모르겠다.
주여 이 죄인을, 무능한 종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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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아름다운 노래]
부족한 우리를 어여삐 여겨 사랑하신다.
여자는 포도원 돌보느라 그을린 얼굴 때문에 외모에 자신이 없다.
그러나 남자는 자기 앞에 선 신부의 아름다움을 칭찬한다.
여자가 자신은 흔하고 평범한 백합화에 불과하다 하지만,
연인은 "당신이 백합화하면 다른 여자들은 가시나무요 "라고 속삭인다.
우리에게 미운 구석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어여쁘게 보신다.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화창하다"는 하나님이 내게 건네는 고백이다.
사랑과 결혼, 그리고 결혼 안에서 맛보는 연합은 하나님이 주신 큰 선물이다.
이 경험이 없어도 삶은 온전하지만(마 19:12, 고전 7장),
결혼을 잘 준비하고 관계를 성실히 가꾸면, 그로 인해 커다란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여자는 연인의 입맞춤을 기다린다.
그와 함께 부부의 침실로 들어가길 기다린다.
이는 충동적인 결정이 아니다.
충분한 시간을 보내며 포도주보다 나은 연인의 사랑을 맛보고,
향기름보다 향기로운 연인의 성품(이름)을 경험하고 내린 결정이다.
예루살렘의 딸들로 불리는 친구들도 남자의 사랑이 참되고 남자의 사랑이 참되고
그의 인품이 고결하다는 것을 인정하기에 더욱 확신할 수 있다.
이렇듯 사랑을 꽃피우고 결실하기까지 신중해야 한다.
시간을 두고 상대의 사랑과 성품을 확인해야 한다.
주변 사람들의 지지가 있으면 더할 나위 없다.
두 연인은 서로를 향한 경탄과 칭찬의 말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표현한다.
다양한 감각과 비유를 사용하여 풍성하게 상대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넘치는 사랑이 사랑의 언어를 풍성하게도 하지만,
다양하게 표현된 사랑의 밀어가 사랑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도, 하나님과 교회 사이에도 마찬가지이다.
여자는 사랑이 원하기 전까지 흔들지 말고 깨우지 말라고 한다.
이 말은 결혼할 때가 되기 전에는 사랑을 절제하라는 당부이다.
사랑은 때가 무르익었을 때 깨워야 기쁨과 행복을 안겨주는 선물이 된다.
제가 사랑스럽지 않을 때, 저를 사랑해주시고 어여쁘다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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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대한 사랑의 시작 ]
<아가 1:1-2:7>
1. 솔로몬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
(여자)
2. 나에게 입맞춰 주세요, 숨막힐 듯한 임의 입술로. 임의 사랑은 포도주보다 더 달콤합니다.
3. 임에게서 풍기는 향긋한 내음, 사람들은 임을 쏟아지는 향기름이라고 부릅니다. 그러기에 아가씨들이 임을 사랑합니다.
4. 나를 데려가 주세요, 어서요. 임금님, 나를 데려가세요, 임의 침실로.
(친구들) 우리는 임과 더불어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포도주보다 더 진한 임의 사랑을 기리렵니다.
아가씨라면 누구나 임을 사랑할 것입니다.
(여자)
5. 예루살렘의 아가씨들아, 내가 검어서 예쁘단다. 게달의 장막 같고 솔로몬의 휘장 같다는구나.
6. 내가 검다고, 내가 햇볕에 그을렸다고, 나를 깔보지 말아라.
오빠들 성화에 못 이겨서, 나의 포도원은 버려 둔 채, 오빠들의 포도원들을 돌보느라고 이렇게 된 것이다.
7. 사랑하는 그대여, 나에게 말하여 주세요. 임은 어디에서 양 떼를 치고 있습니까? 대낮에는 어디에서 양 떼를 쉬게 합니까?
양 떼를 치는 임의 동무들을 따라다니며, 임이 있는 곳을 물으며 헤매란 말입니까?
(친구들)
8. 여인들 가운데서도 빼어나게 아리따운 여인아, 네가 정말 모르겠거든,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가거라.
양치기들이 장막을 친 곳이 나오거든, 그 곁에서 너의 어린 염소 떼를 치며 기다려 보아라.
(남자)
9. 나의 사랑 그대는 바로의 병거를 끄는 날랜 말과도 같소.
10. 땋은 머리채가 흘러내린 임의 두 볼이 귀엽고, 구슬 목걸이 감긴 임의 목이 아름답소.
(친구들)
11. 금사슬에 은구슬을 박은 귀고리를 우리가 너에게 만들어 주마.
(여자)
12. 임금님이 침대에 누우셨을 때에, 나의 나도 기름이 향기를 내뿜었어요.
13. 사랑하는 그이는 나에게 가슴에 품은 향주머니라오.
14. 사랑하는 그이는 나에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 꽃송이라오.
(남자)
15. 아름다워라, 나의 사랑. 아름다워라, 비둘기 같은 그 눈동자.
(여자)
16. 나의 사랑, 멋있어라. 나를 이렇게 황홀하게 하시는 그대! 우리의 침실은 푸른 풀밭이라오.
(남자)
17. 우리 집 들보는 백향목이요, 우리 집 서까래는 전나무라오.
(여자)
2:1. 나는 샤론의 수선화, 골짜기에 핀 나리꽃이라오.
(남자)
2. 가시덤불 속에 핀 나리꽃, 아가씨들 가운데서도 나의 사랑 그대가 바로 그렇소.
(여자)
3. 숲 속 잡목 사이에 사과나무 한 그루, 남자들 가운데서도 나의 사랑 임이 바로 그렇다오. 그 그늘 아래 앉아서, 달콤한 그 열매를 맛보았어요.
4. 임은 나를 이끌고 잔칫집으로 갔어요. 임의 사랑이 내 위에 깃발처럼 펄럭이어요.
5. 건포도 과자를 주세요. 힘을 좀 내게요. 사과 좀 주세요. 기운 좀 차리게요. 사랑하다가, 나는 그만 병들었다오.
6. 임께서 왼팔로는 나의 머리를 고이시고, 오른팔로는 나를 안아 주시네.
7. 예루살렘의 아가씨들아, 노루와 들사슴을 두고서 부탁한다.
우리가 마음껏 사랑하기까지는, 흔들지도 말고 깨우지도 말아 다오.
오늘부터 아가서 묵상입니다. 아가서는 남녀 간의 사랑의 여정을 묘사한 노래입니다.
일종의 뮤지컬 대본 같은 형식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한 인물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면 다른 등장 인물이 마주 나와서 화답하는 형식입니다.
남자와 여자 간의 교창으로 보는 입장도 있고,
제삼자인 합창단(또는 친구들)이 해설자처럼 끼어드는 부분이 있다고 보는 번역본도 있습니다.
번역들이 많이 다르고 해석도 쉽지 않습니다. 무슨 말인지 잘 알 수 없는 표현들도 있습니다.
그냥 큰 흐름을 따라가는 것으로 묵상을 해야겠습니다.
역본은 표준새번역을 사용하였고 화자의 구분은 공동번역과 주석을 참고하였습니다.
[엡 5:31-32]
31.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묵상하는 가운데 이 말씀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그 남녀의 사랑이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으로 완성될 것을 기대하셨음을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특히 교제 중에 있는 청년들이 있다면 서로에게 끌리는 사랑의 감정이
하나님께서 주신 감정임을 잊지 말고 아름답게 키워가면 좋겠습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가지는 관계의 대부분은 임시적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관계의 그림자입니다.
부모자식관계, 부부관계, 직장의 상하관계, ...
이 모든 것이 하나님 나라에서는 없어지게 되는 임시적인 관계입니다.
그렇다면 임시적 관계, 조만간 없어질 관계인 인간관계는 헛되고 무의미한 관계일까요?
임시적인 관계라면 필요에 따라, 상황에 따라 파괴하거나 비틀어도 상관없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관계의 질서를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유지하고 보존하시는 목적이 하나님 나라를 온전히 세우기 위함이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이 땅의 관계 질서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없어질 관계도 얼마든지 의미 있는 관계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관계를 훈련하고 배우는 기회로 삼을 때 그렇습니다.
아가서 묵상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잘 훈련하고 배우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 시작될 때 일반적으로 남자가 여자에게 뭔가를 자꾸 주게 됩니다.
여자는 남자에게서 무언가를 계속 받기를 원하고 남자는 주는 것으로 기쁨을 느낍니다.
연애 초기에는 거의 그렇습니다(나중에는 달라질 수도...^^).
본문에도 여자의 노래 중에 “주세요”(2, 4, 7절, 2: 5절)라는 표현이 여러 번 등장합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도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일방적으로 주시고, 우리는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관계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남자들은 예수님 역할을 하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그러니 너무 억울해 하지 말고 주는 역할 잘 감당하고,
여자들은 교회 역을 하는 것이니 받으면서 겸손한 마음, 감사한 마음 가지면 좋겠습니다.
영원히 그렇게 하라는 것 아니고 연습 기간에만 그렇게 하라 하시니까요.
여자는 포도원지기 일을 하다가 얼굴이 상했습니다.
오빠들의 포도원을 강압적으로 떠맡아서 일했습니다.
그리 넉넉하지 않은 집안의 출신이며, 그나마 그 집안에서도 구박을 받는 신세였습니다(6절).
그렇게 구박 받고, 햇볕에 그을려 피부가 상한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자신이 아름답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5절).
상대 남자는 모든 여자가 좋아할 만한 그런 매력을 가진 남자이며, 신분도 무려 왕입니다(3-4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매우 담대하게 남자의 사랑을 요구합니다(2, 4, 7절, 2: 5절).
이런 자부심과 담대한 사랑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예, 그것은 남자의 사랑입니다.
남자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확신입니다. 남자가 자신을 어여삐 여긴다는 확신입니다.
[요일 4:17-19]
17.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18.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9.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얼마나 신분이 높고 재산이 많으면 왕 앞에서 당당할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이 왕에게 감히 요구를 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재물이 많고, 아무리 신분이 높다 한들 불가능할 것입니다.
삼성의 회장에게 '나는 어떤 부서 어떤 직위를 맡고 싶으니 거기로 보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굴까요?
서울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사람도 감히 그렇게는 못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재물도 없고 사람들이 보기에 최고로 보이지 않을지라도
왕에게, 삼성 회장에게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왕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입니다.
삼성 회장의 사랑하는 가족입니다.
우리의 당당함의 근거는, 우리의 담대함의 근거는 우리 자신에게 있지 않습니다.
진정한 자존감은 우리의 능력과 소유에서 비롯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때,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때;
우리는 당당함과 담대함,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교회는 기본적으로 예수님 앞에서 여자입니다.
아가서 여주인공의 담대함을 내것으로 만드는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습니다.
[요한1서 5:14]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주님, 겸손한 가운데서도 당당할 수 있는 믿음 유지시켜 주옵소서.
주님이 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자주 자주 확인시켜 주옵소서.
그 사랑에 대한 확신으로
사람들의 무관심과 구박, 멸시를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는 담대함을 계속 갖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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