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영성일기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5. 4. 21. 10:13

본문 : 누가복음 24장 13-35절

 

호산나를 외치는 군중들의 환호 소리를 들으며 나귀 새까를 타시고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셨다.

로마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다윗의 왕국이 세워지고 

자유와 해방. 오랜 기도의 응답과 신원이 이루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예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같이 그렇게 핍박과 조롱과 수모를 당하고

힘없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다행히 아리마대 요셉이 나타나 새 돌무덤에 장사할 수는 있었다. 

실망과 허탈과 희망이 사라진 채 엠마오로 두 사람이 걸어가고 있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들과 동행하지만 옆에 사람에게 관심도 없고 시선도 주지 않는다.

그만큼 그들의 마음은 무너지고 공허함으로 투벅투벅 걸으며

지난 며칠 동안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을 것 같다. 

예수께서 그 이야기에 개입하신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하고 있느냐"? 그러자 멈춰 서서 슬픈 눈으로 예수를 바라본다.

글로바가 말한다. "당신은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일어난 일을 모른단 말이냐?"

"무슨 일이냐?"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다.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지 사흘째데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말하기를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하는 천사들의 나타마을 보았다 한다.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아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신다. 

 

널아 어두워지자 예수님은 더 가시고자 하나 그들이 강권하여 같이 유숙하러 마을로 들어간다.

음식을 먹을 때 떡을 가지고 축ㅎ사하여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았는데 예수님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말ㅆ므하시고 성경을 풀어 주실 때 우리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았느냐 하고

곧바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는데

그들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고 하는지라.

그들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덕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했다.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러나 부활을 믿는 자들을 하나 둘씩 늘어난다.

천사들이 전한 말, 빈 무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모세와 선지자들이 전한 말씀을 믿음으로 통해서다.

구약의 말씀들을 새롭게 해석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말씀을 읽어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던 자들에게 영안을 열어 주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으면 부활은 자연히 믿어지는 것이었다.

이제 우리에게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할 때마다 바르게 깨닫게 해 주신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처럼, 우리도 부활할 수 있다는 믿음은 

기록된 하나님을 온전히 믿을 때 가능한 것이다. 

 

2025년 부활절을 보내면서 십자가를 많이 묵상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다.

생각지도 않은 분으로 부터 [십자가를 본 받는 삶]이라는 책을 선물 받고

고난 주간 이 책과 씨름하면서 많은 은혜를 누렸다.  

우리에게는 십자가가 능력이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절정을 보고

십자가로부터 믿음, 사랑, 소망, 능력이 흘러 나옴을 깨달았다.

십자가에서 죽어야 부활의 영광이 있다.

날마다 십자가에서 죽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믿음의 순례길을 걸어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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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한 두 제자]

 

슬픔과 절망을 품고 엠마오(예루살렘에서 7마일 대략 10km 떨어진 마을)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다가와 말을 건네신다.

그들이 말씀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부활을 믿지 못해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나무라지 않으시고 동행이 되어주신다.

예수님은 우리가 슬픔에 잠길 때 곁으로 다가와 우리의 슬픔으로 위로해주신다.

혹여 우리의 깨달음이 부족해도 우리를 꾸짖지 않으시고 우리의 수준에 맞춰 무지를 깨우쳐주신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의 위로자이자 교사로 우리 곁에 계신다.

 

성경에 대한 불신을 책망하신다.

제자들의 미련함은 구약의 예언에 대한 '무지'가 아니라 '더디 믿는'데 있다.

성경을 제대로 믿지 않아서 예수님께 실망하고,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엄연한 현실 앞에서서 절망한 것이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가 교훈하듯, 성경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부활이라는 기적으로도 불신을 벗게 할 수 없다.

 

말씀으로 변화시키신다.

말씀을 듣고도 여전히 예수님이심을 눈치 채지 못한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유하기를 원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실 때처럼 떡을 떼어 주시자

그제야 눈이 밝아진 제자들은 서로의 뜨거워진 마음을 나누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가서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전한다.

말씀은 예리하여 우리 삶을 바꾸기에 충분하다.

말씀 묵상은 내 삶을 제자답게, 하나님의 백성답게 변화시킨다.

 

두 제자가 슬픔에 빠진 이유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활을 믿지 못하니 기대했던 '이스라엘의 속량'도 예수님의 죽음과 함께 물거품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부활을 모르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보자 실패한 인생이 없고,

그 길을 따라가는 우리보다 가련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부활이 있기에 그 길은 가장 아름답고 영광스럽다.

부활을 모르는 사람들과 다른, 부활을  아는 사람만의 '인생을 보는 안목'이 있는가?

 

말씀으로 변화된 시선을 통하여 매일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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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 먹듯이 말씀을 ]
찬송가 200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제자들에게 직접 나타나 보이시는 것을 계속 절제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나타나셨지만 그들의 눈을 가리어 알아보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16, (NLT)But they didn't know who he was, because God kept them from recognizing him).

또한 눈을 열어 알아보게 하셨지만, 육체의 눈으로는 잠시만 보여주시고 곧 보이지 아니하셨습니다(31절).

선지자들이 이미 전한 말씀을 반복하여 들려주십니다. 

“...선지자들이 말한 ...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들어갈 것이 아니냐?’가 아니고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로 반문하십니다

7절에서 “살아나리라”가 아닌 “살아나야 하리라”로 말씀하신 의미와 동일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성경(선지자)이 그렇게 말하였기 때문에 

당연히 일어나야 하는 일,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속과 부활의 당위성에 대해 

그 일들이 타당한 의미가 있고 특별한 효력이 있기 때문에 

우리 구원에 꼭 필요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타당성과 효용성 이전에 예수님의 대속과 부활은

단지 하나님께서 그것을 결정하셨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당위성을 가집니다.

다른 이유나 설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그 말씀이 옳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옳다 그르다를 판단할 자격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옳기 때문에 순종한다는 건방진(?)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순종을 위해 우리가 확인해야 하는 진실은, 그 말씀이 진짜 하나님의 말씀인가 아닌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종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당연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대속과 부활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일이기에 마땅히 이루어집니다. 전혀 놀랄 일이 아닙니다(22절).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선지자들이 말한 대로 십자가를 졌고, 선지자들이 예언한 대로 부활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이 당연히 이루어질 줄을 믿어야 하지 않느냐고, 

그것이 어찌 놀랄 일이냐고 두 제자를 책망하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기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을 

단순히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을 목표로 부활의 영광을 드러내고 계시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의 목적은, 

자신의 구속 사역이 선지자들이 예언한 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제자들이 받아들이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활이 성경에 미리 예언된 하나님의 계획의 성취라는 것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고전 15:3,4절).

단순히 사실을 믿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진짜로 살아나셨다는 것을 믿는 것은 궁극적인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성경 곧 하나님의 계시로 예언되었고,

예수님께서 그 예언대로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을 믿는 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의 소유자는 아직 성취되지 않은 성경의 다른 예언도 당연히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말과 행위의 일부분만을 믿으면서 어떤 인격체를 믿는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 대해 어떤 말은 믿고 어떤 말은 믿지 않으면서 그 사람을 믿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누구를 신뢰한다는 것은 그를 통째로, 그의 전인격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육체로 나타나는 것을 절제하시면서 자꾸 말씀을 상기시키는 목적이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졌구나! 말씀은 이루어지는구나!’ 이것을 깨닫게 해 주시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눈으로 보고 만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짐을 경험하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로써 제자들은 약속의 말씀에 전심을 다하여 매달리게 될 것입니다. 

말씀이 능력이고 말씀이 생명임을 알고 말씀을 먹는 일에 힘쓸 것입니다. 

밥 먹듯이 말씀을 먹을 것입니다.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에 귀 기울일 것입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을 먹고 마시는 일에 마음을 쏟을 것입니다.

음식 잡수실 때 떡을 떼어 먹이시면서 눈을 밝혀 예수님을 알아보게 하신 것은 

말씀을 밥 먹듯이 먹으라는 뜻일 겁니다. 

말씀을 부지런히 먹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성령님을 보내시어 그들의 눈을 열고 말씀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말씀을 소화시키고 체화시켜 주십니다. 말씀을 온전히 믿게 만드십니다. 

마침내 말씀이신 예수님과 한통속이 되게 만드십니다.

주님, 말씀을 일용할 양식으로 먹겠습니다. 

깨어 기도하는 중에 성령께서 가르치고 생각나게 해 주시는 은혜를 받겠습니다. 

오늘도 생명의 말씀으로 떡을 떼어 먹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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