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누가복음 23장 44-56절
예수님이 12시쯤 십자가에 못 박혀 달리셨다.
그러자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한다.
어둠 속에 길이 생긴다.
성소의 휘장이 한 가운데서 위에서 아래로 쭈욱 찢어져 길을 만들어 낸다.
어둠 속에 살아가는 인생들에게 빛으로 나아가는 길을 만들어 주셨다.
그리고 게마트리아의 7번째 마지막 말씀으로 이 땅에서의 사역을 완전히 이루셨다.
주위에 있던 자들이 깨닫는다.
목자들에게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리셨던 하늘 아버지가
이방인의 입을 통하여 그분이 의인이었다고 고백하게 하신다.
무리들은 그제서야 깨닫고 가슴을 치며 운다.
예수를 아는 자들과 갈릴리로부터 온 여자들은 멀리 서서
이땅에서 사랑하는 주님의 마지막 모습을 안타까워하며 지켜보고 있을 것 같은데
누가는 그들의 감정과 반응을 '멀리 서서' 라는 말로 대신한다.
목숨을 받쳐 따르겠다는 제자들은 온데간데 없다.
뒤에서 조용히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들어나지 않게 따르던 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하는데 전면에 등장한다.
요셉이 그렇고, 니고데모가 그러하였으며, 갈릴리에서 온 이름도 없는 여자들이 그러했다.
역사는 늘 변방에서, 이름없던 자들을 통하여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던가
시신을 깨끗한 세마포로 싸고 고나에 몰약과 침향으로 채우고 바위를 판 무덤에 안치한다.
여인들은 무덤의 위치를 확인하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러 간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아직 부활하지 않으셨다.
죽으신 예수님만 보고도 그가 의인이었다고,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할 수 있을까?
주변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향후 자신의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죽은 예수의 시신을 돌보는 그들의 용기와 사랑과 경외심을 바라본다.
끝까지 주님을 사랑하고 다르며 섬기는 무명의 여인들의 헌신을 생각한다.
난 어떤 고백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주님의 충성된 제자로 살고 있는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메시아이심을 믿고 고백하고 있는가?
죽는 날까지 신실하게 충성된 종으로 살고 있는가?
성령님
죽어야 사는 십자가의 신비 앞에서 이 마음 변치 않고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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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이 닫히고 성전은 열리고 ]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가득한 것은(44절)
아버지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을 통해서 예수님의 죽음을 슬퍼하시는 마음을 나타내신 것일까요?
하나님 아버지는 십자가의 예수님의 죽음 때문에 진노하시며 슬퍼하셨을까요?
그래서 그 진노와 슬픔을 흑암으로 나타내신 것일까요?
이어지는 45절은 아니라고 확인해 줍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을 기록한 누가는 하늘이 닫힌 내용과 나란히
성전 지성소의 휘장이 열린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조가 되는 두 사건은 서로 연결된 사건입니다.
하늘이 닫히면서 지성소 휘장이 열리는, 바톤 터치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죽음을 자랑스러워하셨습니다.
죽음을 상징하는 세례를 받을 때 기뻐하셨던 것처럼,
아들의 죽기까지의 순종을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육체의 죽음이 슬프게만 여겨지는 것은 죄악으로 눈이 어두워진 인간에게 해당될 뿐입니다.
하나님께 있어서 죽음은 그 죽음이 어떤 죽음이냐에 따라서 슬픔이 될 수도 기쁨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부활이 예정된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죽음입니다.
그렇다면 해가 빛을 잃고 어둠이 온 땅에 임한 것은 무슨 의미인가요?
온 세상 죄를 지신 예수님이 그 덮어쓴 죄악 때문에 잠시이긴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외면을 받으셨다는 의미입니다.
가장 사랑하는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짊어진 죄악이, 그에게 덮어 씌워진 허물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아들마저도 외면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이 가장 두려워하고 고통스러워했던 것이 이 일이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외면이었습니다.
잠시 동안이지만 하나님과의 단절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십자가 직전에 예수님을 황망스럽게 했습니다.
비록 아들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죄악을 대신 담당하고 있는 동안만큼은 보고 싶지 않으신,
죄악을 미워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흑암으로 표시됩니다.
그래서 온 땅에 어둠이 임하였을 때,
예수님께서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하고 크게 소리 지르셨던 것입니다(마 27:46).
예수님은 참으로 이 순간이 너무나 고통스러우셨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주 예수님께서 마지막까지 십자가를 지고 가심으로 인해
인간에게 드리워졌던 어둠의 휘장은 거두어집니다.
예수님을 향하여는 흑암이라는 휘장이 둘려져 하늘이 닫히고,
인간을 향하여는 가리어진 휘장이 거두어져서 성전이 열리는 선명한 대조가 일어납니다.
41절과 42절의 기막힌 대조와 연결을 예수님은 확인하셨습니다.
기어이 이 일을 이루어 놓으시고(요 19:30) 예수님은 숨을 거두셨습니다.
이제는 아버지 손에 자기 영혼을 부탁하고(46절) 육체의 호흡을 놓으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숨지시니라'의 문자적인 의미는 '영혼을 내어놓다' 또는 마지막 '숨을 내쉬다'입니다.
킹제임스성경은 '영혼을 내어주다'로 번역하였습니다.
마태복음(27:50)에서는 '영혼을 양도하셨다'(아페켄 토 프뉴마)로 표현하였습니다.
이런 표현들은 예수님께서 능동적으로 죽음의 길을 가셨다는 사실을 확인해주고 있습니다.
개정개역 성경이 마 27:50절의 헬라어 능동형 문장을 수동태로 바꾸어 번역한 것은 유감입니다.
예수님은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맞이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루어야 할 과업의 마지막 과제를 죽음을 통하여 이루셨던 것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 자기의 전인격을 교회를 위해서 온전히 내어놓는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 왕이신 예수님의 왕권이 확정되고,
하나님은 예수 믿는(예수님을 왕으로 영접하는) 죄인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용서를 선언하시고 결행하십니다.
그 징표로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가린 휘장을 거두셨습니다.
구체적인 사건들이 뒤를 이어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모르던 자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고백이 터져 나오고(47절),
굳어진 심령들에 가슴을 치는 애통이 일어나며(48절),
믿음을 고백하지 못하던 자가 담대한 신앙 고백을 하게 됩니다(52절).
또한 마태복음 27:51-52절에 의하면,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지는 가운데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죽음(흑암 휘장의 드리움)과 성도의 회생(성전 휘장의 열림)이 바꿔치기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자기를 잠시 죽여서, 교회라는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셨습니다.
그분이 다시 살아나시면,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여자(교회)가 되어 예수님의 죽음을 끝까지 따라가면(55절), 그 일도 보게 될 것입니다.
주 하나님, 우리에게 이 놀라운 십자가의 효력이 지금 나타나고 있음을 믿습니다.
새롭고 산 길에 들어섰으니, 성령님의 인도에 따라 거룩한 길로 계속 가게 하옵소서.
다시 살게 된 생명을, 영원히 사는 생명으로 확정시켜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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