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글쓰기

떠남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3. 2. 24. 10:22

출근길에 진행자가 전해주는 사연에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마지막 출근 길에 갖는 감정들은 어떤 것일까?

아직 직장을 퇴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그 감정을 충분히 공감하지는 못하리라.

 

즐겁고 좋았던 감정, 보람 있었던 일, 기뻤던 일,

억울하고 외롭고 슬펐던 일, 지치고 힘들었던 일,고달펐던 일, 당장 떠나고 싶었던 일, ....

이 모든 감정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떠난다.

우리 말에는 시원섭섭하다는 말이 있다.

모든 감정을 한마디로 뭉뚱그려 표현하자면 딱 적당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미련도 없다.

과연 그럴까?

지난 자신의 삶의 흔적들이 묻어 있는 곳인데 ...

24년을 근무하던 동강병원을 떠나 동천동강병원으로 올 때 섭섭함이 컸다. 

약간은 배신감도 들었다. 

떠나온 뒤로 몇 년간은 병원을 지나도 눈길도 주지 않았다. 사람들도 만나지 않았다.

인간은 그렇다. 감정이 생각을 지배하고 그리고 생각은 행동을 지배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여러가지 사유로 일터를 떠난다. 

정년으로, 자의로, 강제로, 다른 직장을 찾아서 ...

이 근무지에서도 정년이 몇 년 남지 않았다.

최근들어 자주 떠남에 대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미련없이 떠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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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나도 여러 번 떠났다.

삼기 국민학교를 49회 졸업생으로 졸업하고 떠났고,

삼기 중학교 2학년 때 다니를 학교를 떠나 부산으로 유학을 떠났다.

초량에 있는 부산 고등학교를 떠났고, 인제의대를 졸업하고 수련 과정을 마치고 부산을 떠났다.

군의관 40개월 동안 살던 경기도, 파주와 양주군 송추를 떠나 울산으로 왔다.

최근에는 동강병원을 떠나 동천동강병원으로 떠나왔다.

그리고 20년 출석하던 울산교회를 떠나 울산신정교회로 떠났다. 

각각의 감정들이 다 다르다. 

그리고 마지막 이 땅을 떠나는 일이 있을 것이다.

 

아니 또 다른 떠남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자세히 생각하면 매 순간이 떠남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집을 떠나 직장으로 향하고, 직장에서 집으로 향하는 일들의 반복이지 않은가?

 

갑작스런 떠남이 아니다. 

여러 번 떠남의 연습을 해 왔었다. 단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다. 

짦게 머물렀던 곳과 오래 머물렀던 차이가 있고, 그 시간 만큼 겪은 일들과 감정들이 

떠남의 강도와 감정의 깊이를 더한다. 

 

나는 나그네 하면

개나리 봇짐 하나 짊어지고, 지팡이 하나 손에 쥐고, 삿갓 쓰고 걸어가는 모습을 연상한다.

유목민인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막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오늘 필요하면 당장이라도 장막을 걷고 다른 곳에서 장막을 치면 그만이다.

인생은 나그네길이라 하지 않던가

나그네의 특성은 떠남이다. 한 곳에 오래 머무름이 아니다. 

날마다 떠나는데, 마지막 떠나는 길에도 특별한 검정이 있을까?

다를 것이다. 마지막이니까... 

 

떠난 나의 자리의 흔적은 어떨까?

생각은 꼬리를 물고 또 다른 생각으로 이어진다.

깨끗한가? 지저분한가? 더러운가?

남은 자들은 떠난 자를 뭐라고 평가할가? 그리워할까 속 시원해 할까?

 

날마다 떠남은 계속되고 또하 떠남의 연습도 계속된다.

아름다운 떠남? 그런 말이 합당한지는 모르겠지만

미련 없이 후회 없는 떠남을 생각한다.

내년이면 30년 직장 생활이다. 정년이 4년 남았다.

지금 이 자리, 현재에서 후회 없이 충실하게  일하다가

미련 없이 홀가분하게 떠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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