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묵상2023.9.14.목]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행6:15 ]
아브라함 링컨이 대통령이 되어 내각 구성할 때 어떤 사람을 추천 받았는데,
그 사람 얼굴을 보고는 거절을 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링컨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뱃속에서 나올 때는 부모가 만들어준 얼굴이지만,
그 다음부터는 자신이 얼굴을 만드는 것입니다.
나이 사십이 넘으면 모든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과학적으로 보더라도 심리 변화는 신경전달 물질의 농도 차이를 발생시키고,
근육은 표정에 변화를 만듭니다.
항상 신경질적이고 초조하고 우울했던 사람은 얼굴에 그 마음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늘 화를 내던 사람의 얼굴은 보기만 해도 무섭습니다.
당신의 전체적 분위기 얼굴이 세월의 흔적이 담기기를 기도하며 축복합니다.
잘 알려진 이야기이고 익히 알고 있었던 내용이다.
난 나의 얼굴에 책임을 질 수 있을까?
미소를 머금은 웃는 얼굴, 인자하고 자상한 얼굴, 여유롭고 넉넉한 얼굴,
사랑이 가득한 얼굴, 편안한 얼굴 ....
그래서 동양에는 관상이라는 것이 유행했다.
태어날 때 부터 소유한 생물학적 얼굴도 중요하지만
후천적으로 형성된 얼굴의 이미지 또한 중요하다.
태어날 때 부터 가진 모습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후천적인 것은 나의 노력에 의해 형성될 수 있다.
한 인간의 지난 인생의 여정을 얼굴에서 읽을 수 있다는 이야기 아닌가?
사람이 살아가면서 대인 관계에서 얼굴 인상이 중요하다.
첫 인상은 상대방에게 큰 영향을 준다.
그래서 성형 수술에 많은 돈을 들여 수술을 받고 미용을 위해 많은 노력과 돈을 쏟아 붓는다.
얼굴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 자신감 결여, 대인 기피 등 어려움이 있다면
성형으로 자기 얼굴에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다면 좋은 유익함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인위적인 노력에 의한 성형된 얼굴이 아니라
내면의 성숙함으로 우러나오는 얼굴의 아름다음은 가치를 따질 수가 없다.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래 세월 수많은 삶의 여정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오늘 거울 속에 비친 나의 얼굴을 바라본다.
책임질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