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기 없는 본래 얼굴을 민낯이라고 부른다.
여자들은 젊어서 부터 화장을 하기 때문에 화장 없이 외부인을 만나는 것을 꺼린다.
화장을 하면 사람이 달라보이고 젊어 보이고 예뻐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작은 가면을 쓰고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오늘 본문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즉위한지 2년이 지나서 꿈을 꾸었다.
왕은 자기가 꾼 꿈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그 꿈을 꾸고 난 뒤 불안과 번민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힘들었다.
그리하여 제국에 있는 모든 술객들과 점성술가와 지혜로운 자들을 불러
자신이 꾼 꿈을 말하고 해석하게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인간이 타인이 꾼 꿈을 어떻게 알며, 최소한 어떤 꿈인지라도 말해 주어야
나름대로 해석을 할 수 있는데 참 답답한 상황이다.
그러나 왕은 이 상황을 용납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꿈과 해석을 요구하고
그렇지 못하면 다 죽이겠다고 명령한다.
바벨론 제국의 왕의 자리가 어떤 자리인가?
엄청난 권력과 부와 힘을 소유하고 있고 행사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자리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 하나에 왕은 번민하고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늘 주변에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과 권모술수가 도사리고 있는 그 자리가 불안한 것이다.
그래서 억압과 폭력으로 힘과 권력으로 상황을 극복하고 지배하려고 한다.
따라서 황의 자리에 있지만 늘 불안하여 평안이 없는 상황에서 이상한 꿈을 꾸었으니 얼마나
번민하고 힘이 들었겠는가...
진정한 평안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우리는 소유에서 만족과 행복을 찾고 성취와 성공에서 평안을 희구하며 살아간다.
과연 그런가? 오늘 바벨론 왕 보다 더 소유하고 성취할 수 있는가?
냉철하게 바라보자. 그렇지 않다는 것을 오늘 본문은 여실히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을 어떻게 해야 참 평안과 안식을 그리고 행복을 누릴며 살 수 있다는 말인가?
평화의 왕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자. 그분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믿고 따르며 살아가자.
이 세상의 어떤 것으로는 줄 수 없는 평안을 경험할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살아온 인생과 신앙생활의 결론이다.
오늘 갈대아의 많은 점성술가와 술객들과 지혜자들은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서 답답하고 억울하고 멘붕 상태에 빠졌을 것이다.
인간의 지식과 지혜가 어떤 피조물 보다 뛰어나고 유익한 것들이 셀 수 없이 많지만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의사인 나도 꿈에 대한 이해와 지식은 미미하다.
어떻게 꿈을 꾸께 되는지 그 꿈이 무엇을 말해 주는지 ....
우리는 인간의 한계에 정직하게 인정하고 신의 영역과 능력을 인정하고 겸손해져야 한다.
신의 능력 앞에 인간이 가진 지식과 지혜는 비교할 수 없다.
유한한 존재가 깨닫고 헤아릴 수 있는 지식과 지혜의 한계를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이 현명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신적인 존재라도 되는 양 행동하는 교만한 인간들을 본다.
바벨론의 민낯, 불안, 무지, 폭력 앞에 속수무책의 상황이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려
그분의 인도하심, 보호하심, 베풀어주시는 지혜를 구하면서
오늘도 참 평안함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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