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요한복음 : 4장 23-24절
제목 : 예배, 하늘의 입맞춤
들어가며
예배드리는 자들 중에는 여러 파가 있다.
관람파, 수면파, 친교파, 독서파, I.T파 엽기파, 지각파 ....
그러나 모든 시간을 그렇게 지루한 것이 아니다.
아이돌 공연은 몇 시간이고 서서 열광하면서 말이다.
왜 예배 시간이 지루한가?
예배가 무엇인지를 몰라서 그렇다.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가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다.
예배 시간 중에 하나님이 임재하심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라.
구약의 족장들은 하나님의 임재하신 곳에 재단을 쌓고 예배했다.(제사를 드렸다.)
창 28:16 ...야곱이 하나님의 임재하신 곳, 벧엘
출 20:24 ...모세, 이름을 기념하는 곳,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구약에서 하나님의 임재의 모습들은
음성으로, 불로 재물을 태우시기도 하고, 심판의 불로 임하시시도 하셨으며, 구름으로 임재하셨다.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할 때 영고아스런 구름이 성전에 가득했다. (역하 5:14)
신약에서는 구름, 음성, 불 등 가시적 임재는 없다.
영으로임재하신다.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기 때문에 영으로 임재하셔서 성령으로 교통하신다.
구약 시대의 하나님의 임재는 장소의 재한이 있엇다. 지정된 장소에서만 가시적으로 임재하셨으나
신약 시대의 임재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예배하는 곳에) 영으로 임재하신다.
영국의 마틴 로이드 존슨 목사의 이야기
한 젊은 사람이 귀신들려 평상시에는 발광을 하는데,
사람들이 끌어다가 예배당에 앉혀 놓으면 조용히 예배를 드렸다.
그러다가 귀신이 떠나가고 집사가 되었다.
어느 날 목사님이 이 분에게 물었다. 처음 예배당에 왔을 때 어떤 느김이었는가?
...설명할 수 없는 힘이 자신을 누르는 느낌이었다고.
한 아이가 취침 기도를 했다.
오늘 예배 참 좋은 시간이었어요. 하나님도 함게 계셨더라면 좋앗을텐데...
..하나님이 예배 중에 임재하심을 모르는 기도이다.
교통이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와 축복을 내려주시는 하향적 하나님의 행위와
우리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상향적 인간적 행위가 상호 교차하고 교통하는 것이 예배이다.
A. 예배 중에 일어나는 하나님의 하향적 행위의 순서.
1. 예배로의 부름
...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주시는 시간.
하나님이 말슴으로 우리를 불러 주시는 은혜로운 시간이다.
목사가 대언하는 하나님의 말슴 봉독을 통해서 진행된다.
구약 시대에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엇다. 하나님을 대면하면 죽었다.
대제사장만이 일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다.
대제사장은 옷솔에 방울을 달고 지성소에 들어 갔는데 이는 죽지 않고 돌아옴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방울 소리가 나면 밖에 있는 자들이 안도의 숨을 수있었다.
거룩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일은 두려운 일이다.
전승에 의하면 대제사장은 발목에 밧줄을 걸고 지성소에 드렁갔다고 한다.
만약 대제사장이 지성소에서 죽으면 다른 사람은 지성소에 들어갈 수가 없음으로
죽은 대제사장을 끌어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죄인들은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지성소 앞 휘장이 위에서 부터 아래로 찢어졌다.
하나님의 손이 직접 찢으셨다는 증거이다.
이제 휘장을 통과하여 지성소,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갈 수가 있다.
이런 하나님이 예배로의 부름이 성경 봉독 시간이다.
눈을 뜨고 감격해 하며 아멘으로 화답하라.
2. 성경 봉독
성경 봉독은 설교의 전주곡이 아니다.
생명과 구원의 내려주시는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
초대교회는 3번의 봉독을 하였다.
..① 구약 ② 신약 ③ 복음서 (교인들이 일어서서 들었다.)
예배 중에 성도들이 딱 한번만 일어서야 한다면 성경봉독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성도 중에서 성경 봉독을 한다면, 집에서 많이읽고 준비해야 한다.
내가 은혜 받고 확신이 들 때가지 반복해서 계속 읽어라.
그렇게 준비하고 성경봉독을 하면 은혜가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당연하다.
3. 설교
설교는 설교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이다.
즉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인가 설교자를 통해서 말씀하신다.
선지자..> 사도..> 목사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은 시작하면서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라고 시작했다.
설교는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ㅆ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통하여 말씀하시기로 그렇게 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연약한 청중의 눈높이에 맞추어 연약한 설교자를 세워서 말씀하시기로 디자인하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설교를 평가(점수를 메기기 등)해서는 안 된다. 메시지 내용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점수 메기는 것이다.
우리의 자세는 마리아처럼 "주여 말씀하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해야 한다.
그래야 설교가 은혜가 된다.
목사도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고 자신이 굉장한 존재인 양 목에 힘을 주면 잘못이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강단에 서야 한다.
불결한 연약한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입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전한다고 생각한다면 벌 벌 떨어야 당연하다.
인간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연구하고 기도할 때 메시지를 주신다.
선포되는 말씀이 증거된다. ?
4. 성례
성례에는 세례와 성찬이 있다.
1) 세례
세례는 하나님이 구원을 인쳐 주시는 것이다.
마음으로 믿어 구원을 받지만 세례를 통하여 가시적으로 구원 확실한 것을 보여 주셨다.
과거 로마시대에 노예가 자기 소유임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인두로 몸에 낙인을 찍었다.
마찬가지로 세례도 구원을 인쳐 주시는 것이다.
세례 행위 과정에 하나님이 인쳐 주시는 것이다.
수세자 입장에서 잘 준비가 않되어 세례 받는 것을 그려워하거나 망설이거나 미루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세례가 하나님의 인쳐 주심이라는 것을 안다면 빨리 받으려고 할 것이다.
그 내용을 안다면 얼마나 감격스러워 할 것인가?
cf. 부산에서 주일 날 설교를 하던 교회에서 세례식을 거행했다.
한상동 목사님 밑에서 신앙생활을 하셨던 어느 노 권사님이
내 평생에 가장 은혜스럽고 감동적인 세례식이었다고 말씀하셨단다.
2) 성찬
인간편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기억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성례는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시간이다 무엇을?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내려주시는 시간이다.
예수님과 연합되는 시간이다. 이미 연합되었지만
우리가 느끼고 감지할 수 있도록 성례를 주신 것이다.
성례는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는 부수적인 아니다.
성례를 자주하면 덤덤해지고 타성에 젖어 간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받아 연합하는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
자주한다면 더 연합이 견고해 진다.
고난과 떡은 연결이 잘 안 된다.
차라리 대못이나 가시를 나눠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떡이나 잔이 우리 몸 안에서 녹아져서 뗄래야 뗄 수없는 일체가 되는 것이다.
성례의 핵심은 예수님의 몸을 주시는 것이라는 것이다.
뗄 수 없는 연합으로 믿음이 확실해지고 견고해지는 것이다.
5. 축도
축도는 기도가 아니다.
기도는 사람이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고
축도는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복을 내려주시는 것이다. 약속하시는 것이며 선포이다.
목사가 축도하면서 손을 드는 행위는 안수의 표시이다.
한 두명이면 직접 머리에 손을 얹지만, 다중의 회중이기에 손을 드는 것이다.
축도할 때 눈을 감지 마라, 앞을 바라보라.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주신 복을 아멘으로 받아라.
cf. 고신 교단에 유명한 장애인(곱추) 부흥사 목사님이 계셨다.
그래서 성도들에게도 무시를 받고 깔봄을 당하셨단다.
어느 권사가 사정이 있어서 축도할 때에 예배 자리에 들어왔는데
목사님의 손에서 광채가 나더란다.
그래서 목사님 깔보면 안된다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했었다고 한다.
축도는 하나님이 복을 내려주시는 은혜로운 시간이다.
B. 어떤 자세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1. 믿음으로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하심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라.
cf. 어느 교회 오후 예배에 설교하러 갔다가 어느 권사가 건네 준 주보에
한쪽 모퉁이에 메모가 적혀 있었는데, ' 목사님이 본래부터 반지를 끼셨나?"
예배 시간에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시간이 아니다.
천의 하나, 만의 하나라도 소흘함이 없이
하나님이 불러 주셨는데 전심을 다해 예배해야 한다.
미국에 헨리 피처라는 유서 깊은 교회의 유명한 설교가가 있었다.
관광 명소가 되었단다.
하루는 헨리 피처가 사정이 있어서 설교를 못하고 동생 토마스 피처가 설교를 하게되었다.
그러자 관광객들이 헨리 피처가 설교를 하지 않으니 돌아가려고 했단다.
그러자 토마스 피처가 이렇게 말했다.
헨리 피처를 보려 오셨으면 돌아가시고, 하나님을 예배하러 왔다면 예배를 드려라.
대표기도는 설교와 비슷하게 가르치려고 하면 문제가 있다.
사람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간구하는 것이다. 그러면 믿음으로 담대하게 기도할 수 있다.
찬양대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으 ㄹ바라보고 찬양해야 한다.
cf. 어느 교회에서 예배 시간에 설교 전에 찬송가 94장을 불렀다.
1절을 부른 뒤에 목사님이 찬송을 중단하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 주님이 듣고 계십니다. 가사대로 고백하며 찬양합시다."
그러자 아무도 노래를 부르지 못했다.
반주가 2절을 치자 여기저기서 흐느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결국 아무도 그 찬송을 부르지 못하고 연주가 끝이 났다.
그러나 가장 은혜로운 찬송이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찬송하면 은혜가 된다.
2. 기쁨으로
시편
시편
..예배자의 기쁨과 감격을 표현하는 구절이다.
구약 예배는 규율이 있어 딱딱하다고 생각하는가?
시편을 보면 격정적이고 기쁨이 충만하고 감사가 넘치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성령이 임하시면 기쁨으로 시끄러운 예배가 된다.
박수 : 우리 왕이 승리하셨다는 것을 축하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cf. 김정은이가 고모부 장성택을 대포로 쏴 죽였다.
이유는 자신이 연설할 때 박수를 건성으로 치고, 짝다리하고 연설을 들었다는 것이 이유다.
손을 드는 행위
과거 가신이 왕과 언약을 맺을 때 손에 언약의 징표를 새겼다.
그래서 손을 들 때 오아이 그 언약을 보시고 지켜주소서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따라서 손바닥을 앞을 향하는 것이 맞다.
3. 헌신
결혼시장이나 장례식자에 가면서 빈손으로 가지 않고 축의금이나 조의금을 들고 간다.
마음, 시간, 물질, 몸을 바치는 헌신이 필요하다.
cf. 여전도회 회장이 아파트 분양하는데를 열심히 찾아 다녔다.
그날 저녁 헌신예배를 드리는데 찬송가 105장을 부릅시다 해야 하는데
105동을 부릅시다고 했다고 한다.
cf. 미국 한인교회, 한 장로가 토요일 저녁에 비디오 가계에서 한국 드라마 [용의 눈물]이라는
비디오를 여러 편 보다가 늦게 잠이 들었다고 한다.
자밍 부족한 상태에서 주일 날 기도를 하는데 '성은이 망극하나이다.'라고 기도했다는 것이다.
주일 성수를 위해서는 토요일 저녁부터 준비해야 한다.
과거 연보를 준비하면서 빳빳한 지폐를 준비했고 없으면 다리미로 다려 가지고 헌금을 했었다.
시간도 정성을 다해야 한다.
예배 중에 야구장 시작 시간, 세일 생각, 시계를 자주 보는 행위 등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라.
cf. 한 농부 집에 쌍둥이 송아지가 태어나서 기분 좋아했었단다.
그러다 한달 후에 한 마리가 병이 들어서 죽어 버렸다.
부부가 두 마리 중에 한 마리는 교회 바치기로 했었던 것 같다.
한 마리가 죽자 하는 말이 그나마 교회 바칠 놈이 죽어서 다행이다고 했다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 줄어드는 재정에 연보 부터 줄이려고한다.
예배의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지 안다면 최선을 다해 예배를 드릴 것이다.
친구 목사가 연로하신 장로님이 기력이 많이 쇠약해져서 임종예배를 드리셨다고 한다.
아직 정신이 있으셔서 그래도 기력을 회복하시라고 희망을 말씀을 건네셨다고 한다.
그러자 장로님이 하시는 말씀이,
"목사님 천국 갈 준비는 다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틀 후면 주일입니다.
마지막으로 교회 가서 성도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것이 마지막 소원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단다.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가 있는 예배 자리에서 엄청난 축복을 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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