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9 ~ 6/21 까지 요양병원 의료기관 평가 인증조사를 다녀왔다.
부산 다대포 항 주변이다.
병원 이름이 특이하다. [TIME]
미션도 독특햇다. "어르신들의 소중한 시간을 함께하는 병원"
어떤 병원일까?
숙소는 하단에 있어 숙소와 병원간 승용차로 약 20분 정도 소요되었다.
2.5일 조사가 진행되는 경우라 오전에 조사위원들이 만나 함께 이동해야 했다.
늘 새로운 조사 위원들을 만나는 일이라 약간은 긴장이 된다.
그래서 늘 기도한다. 좋은 분들을 만나 조사를 잘 할 수 있도록 ...
이번에는 어떤 분들일까?
공문으로 조사위원2, 간사는 간호사 출신이며 전담조사위원이고, 조사위원 3은 행정 출신의 전담위원이며
한 분은 참관인으로 오신다고 한다.
간사분은 고양시에서, 조사위원3은 청주에서,참관인은 천안에서 KTX로 오신다고 한다.
나중에 이야기를 하다보니 세 분이 다 충청도 사람들이다.
특히 김 선생은 충청도 특유의 느림과 여유와 조용함이 베어 있는 분이었다.
유일하게 내가 승용차로 이동하게 되어 함께 움직일려고 하면 3분을 픽업해야 한다.
단톡방으로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정하고 조금 일찍 도착하여 부산역 주변 주차장에 주차하려고 했다.
그러나 만차다. 선상 주차장을 두 바퀴나 돌았으나 만차라 포기하고
주변 유로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한참을 걸어서 역으로 걸어갔다.
네임택을 걸고 인증원에서 준 검정색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
먼저 김성호 선생(기획실 근무, 은퇴)이 뒤에 조윤희 선생(강남세브란스병원 감염관리실 근무)
그리고 한시현선생(단국대 병원 Q.I실)과 만나
1층 양산식당에서 국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조사할 다대포 항으로 향했다.
40분 정도 걸린다고 하여 서둘러 움직였다.
부산에서 15년을 살았지만 많이 변화되어 내비게이션 없이는 갈 수도 없다.
그리고 오랜만에 찾아가는 다대포항과 해수욕장 주변이다.
나도 한번인가 두번 정도 밖에 가보지 않은 지역이다.
40분 정도 소요인데 조금 일찍 도착했다.
병원과 약속 시간도 있고 해서 주변 다대포 해수욕장으로 가서 바다와 해변을 구경했다.
첫 날은 규정 검토일이다.
요양병원이 컨설턴트를 받은 모양인데 사설 카설턴트였던 것 같고 조금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경영 형태를 보니 이사장의 입김이 센 모양이다.
부인은 행정원장, 아들은 기획실장, 딸은 행정실장이다.
나중에 리더십 인터뷰 때 이사장은 자수성가의 재력가라고 자랑을 한다.
28개 대성학원을 운영했고, 건설업도 하였으며, 자신이 직접 병원을 건축했다고 자랑한다.
저녁은 바다 뷰가 좋다고 추천받은 2층 음식점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오뎅탕을 먹었다.
2.5일 조사는 첫날이 여유가 있다.
한 참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래도 숙소에 들어가 조금은 조사 보고서를 작성하고 잠을 청했다.
두번째 날에는 ST &IT를 집중적으로 시행하는 날이다.
옥상의 하늘 공원은 잘 가꾸어져 있었다.
본관과 신관이 연결되어 있었고 신관 입구에도 조경이 잘 되어 있다.
하드웨어적인 것들은 잘 되어 있고 요양병원으로는 바닥이 대리석이고 침상간 커튼이 처져 있고
요양병원 특유의 냄새도 없다. 전산은 EMR, PACS다.
재활전문요양병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재활의학과 의사가 2분이나 근무하고 있고
25명의 물리치료사 작업치료가 있어 인상적이다.
그러나 software 에서 조금은 detail 하지 못한 점들이 들어난다.
그래도 비교적 큰 언쟁 없이 조사는 잘 맞쳤고 조사보고서 작성과 총평을 했다.
사실 대학 1년 선배인 주 홍 선생과 고등학교 동기 전 병민 선생이 근무하고 있었으나 인사하지 않았다.
모든 조사보고서 작성이 끝나고 잠깐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공정성을 위해서 학연, 지연은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 윤희 간사의 가정사에 아픔이 밀려 오기도 한다.
그러나 본인은 진즉 숨김없이 담담하게 가정사를 털어 놓는다.
남편은 목사였고 목회자 사모로 살면서 직장을 다녔다.
남편은 폐이식을 받았고 뒤에 합병증으로 재이식을 못하고 최근 2-3년 전에 사망했다.
그리고 어머니도 돌아 가시고 작년에 6개월을 남겨두고 37년 직장생활에서 은퇴를 하고
아들, 딸과 생활하고 있었다.
딸은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었다.
선생님은 의대를 가라고 권유하였으나,
그런 실력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공부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부친은 이북 출신으로 충청도에서 목회를 하셨다고 한다.
가난이라는 경제적인 문제로 갈등을 갖지 않고 살아가는 믿음의 모습이 귀해 보였다.
모든 상황을 믿음으로 담담히 말하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한 선생은 카톨릭 신자였고, 김선생은 일가친척이 다 기독교 집안이지만
그리고 성경학교도 다녔고 성경도 읽었지만 교회는 출석하지 않고 있었다.
많은 대화들이 주로 신앙적인 문제들이었다.
김선생은 조금 불편하였겠지만 조금은 도전이 되었을 것이다.
김 선생도 기독교인으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도한다.
돌아오는 내내 조 선생이 생각이 난다.
나이는 같은 80학번 갑장이었다.
머리는 염색을 하지 않아 반백의 모습이고 옷차림도 수수하다.
외모나 복장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이다.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신앙으로 그런 것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일까?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밝고 순수해보이는 얼굴 표정이 인상적이다.
언제 또 같이 만나 조사를 갔으면 좋겠다는 카톡 문자가 머리에서 맴돈다.
같은 신앙인으로 삶과 신앙의 이야기들을 나눌수 있어서 행복했다.
조사를 다니면서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작은 행복이 있어 좋다.
특히 신앙적인 이야기를 나눌때면 더 행복하다.
이것이 조사와 더불어 덤으로 주어졌다. 그래서 이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10년이 넘도록 전국 여러 의료기관들을 다녔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나 기억에 남는 분들도 있다.
나는 그분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승용차를 몰고 울산으로 돌아오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이번이 2024년 첫 요양병원 조사였다.
1주기 때부터 지금까지 자원조사위원 및 팀장으로 1년에 3회 내지 4회 조사를 다녔다.
팀장으로 이 활동도 조만가에 끝이 다가오고 있다.
조사위원을 하면서 염 호기도 만났고 대학 선배들도 만났으며, 오 태윤이는 이번에 이사장이 되어 만났다.
의료기관 평가 인증원에서 목표하는 환자, 직원, 의료 환경의 안전과
의료기관의 의료 질 향상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향해 인증 기준을 만들고 거기에 도달하도록 유도했다.
지난 10년 넘은 조사위원 활동을 통해 뒤돌아보면 급성기 4주기 인증, 요양병원 등 3주기 인증을 통하여
상당 부분 의료기관들의 안전 문화가 정착되고, 기준들이 표준화되고, 의료 질 향상이 이루었다고 생각된다.
이 활동을 통해 대한민국 의료 발전에 미약하지만 일조를 했다는 작은 긍지와 보람을 갖는다.
나의 인생의 이력서에 써 넣을 긍정적인 한 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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