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영성일기

기브온 주민과의 조약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5. 1. 14. 10:18

본문 : 여호수아 9장 16-27절

 

기브온 주민들의 꾀에 빠져 신중하지 않은 결정으로 조약을 맺었다.

거짓은 오래가지 않는 법, 며칠 만에 들통이 나고 말았다.

조약이 파기될 위험에 처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행동이었을까?

 

내가 기브온 주민이라면 어떠했을까? 

그들의 이야기를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의심하지 않고 믿고 있음을 본다.

그들이 들은 능력있는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싸울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평화조약을 맺거나 항복이었다. 

 

진멸의 대상이지만 자비를 바란 기브온 주민을 용납하신다.

기브온 주민은 그들의 '꾀'로 건짐받은 게 아니다.

여호수아나 이스라엘의 아량은 더욱 아니다.

오직 사랑이 크고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 규칙을 유보하심으로 그들을 받아주신 것이다.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이스라엘 백성 역시 진멸의 대상이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다(신 9:22-29).

우리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진멸을 면하고 구속받았다.

하나님의 은혜를 빼면 이스라엘과 우리도 기브온과 다르지 않다.

구원은 우리가 획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선물이다(엡 2:8,9).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특별히 믿지 않는 사람들을 대할 때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는 사실이다.

 

저자가 이 기브온 주민과의 평화조약 이야기를 기록한 의도가 무엇일까?

기브온 주민의 꾀와 이스라엘의 성급한 결정만을 바라보면다면

진멸의 대상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편입되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수 없다.

나와 기브온 주민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나의 어떠함과 어떻게 구원받았는지를 잊어버리면 안 된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방법을 이렇게 구약에서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전적인 이스라엘만이 아님을 깨닫는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택함  받은 자들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평화조약을 맺은 사람들이 이웃에 거주한다는 사실을 알고 난처해졌다.

모세를 통해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신 20;16,17).

그들은 평화조약을 깨고 진멸 명령을 실행할지, 명령을 어기고 맹세를 지킬지 선택해야 했다.

여호수아와 족장들은 최종적으로 기브온 주민에게 한 맹세를 지키기로 결정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한 맹세이기 때문이다.

맹세를 어기면, 기브온이 속였다는 속사정을 모르는 주변 민족이 이스라엘 하나님을

'약속을 지키지 않는 비열한 신'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명예를 지키는 결정을 내렸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원하신다(딤전 2:4).

우리는 세상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컬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한 맹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지켜져야 한다.

비록 자신들의 경솔함으로 빚어진 상황이지만 그 조약을 지키려는 모습이 훌륭해 보인다.

나의 작은 말이나 행동 가운데서 잘못한 행동을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없기를 다짐해본다.

잘한 행동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은 쉽다.

그러나 잘못된 선택이나 행동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가리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손해보거나 피해를 보더라도 책임을 다하여 약속을 지켜야 한다.

 

기브온 주민과 함께 살아가면 이스라엘이 그들의 관습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기브온 주민을 종으로 삼되, 성막과 제단에서 봉사하게 함으로

아예 하나님을 섬기는 족속이 되게 하고 이스라엘 백성과의 접촉도 최소화시켰다.

이는 기브온 주민에게 베푼 은혜이자 이스라엘을 보호하는 지혜이다.

 

불행 중에 다행이라는 말이 있다.

정직한 조약은 아니었고, 잘못한 조약이었지만 

여호수아가 내린 조약 후 결정은 

기브온 주민에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최선의 방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나는 하나님 나라의 문지기라도 좋다'라고 하였다는 말이  생각난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만 있다면 어떤 신분, 어떤 모습이라도 상관없이 족하다는 고백이다. 

종으로 장작을 패고 물을 긷는 신분이었지만

그들은 생명을 구원하였고, 더욱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이방신을 섬기던 습관과 삶에서, 하나님에게 제사하는 성전의 섬김을 통해

하나님 백성으로 변해갔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바벨론 포로 귀환 때에도 또다시 성전을 섬기기 위헤 돌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근묵자흑 근적자적]이라는사자성어가 있다.

더러운 것에 가까이 있으면 더러워지기 쉽다. 

기브온 주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접촉을 최소화한 조치는 현명한 결정이었다.

거룩해지기 위해서 유대인들은 얼마나 많은 규칙을 만들고 지키려고 노력하였던가

지나침이 본래 의도가 전도되기는 했지만 그들의 노력은 존경스럽다.

하나님의 거룩함에 합당한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구별된 삶을 살기 위해  몸부림쳐야 한다.

 

하나님의 명예를 드높이고, 이웃에게 신뢰를 주며, 자신의 거룩함을 지키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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