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누가복음 11장 37-54절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점심 식탁에 초대하였는데
예수님이 식사 전에 손을 씻지 않으셨음으로 불편해 한다.
이어지는 예수님의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의 자신들이 가르치는 것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음, 외식을 지적하시면서 화 있을진저로 말씀을 이어가신다.
외식은 겉만 보기 좋게 구미어 드러냄이라는 사전적 의미다.
예수님은 다른 복음서에서는 바래인과 서기관들을 향하여 '외식하는 자들이여'라고 말씀하셨다.
인간은 지극히 외식적이다.
평상복, 일상복과 외츨복이 다르다.
가족들과 외부인들을 대할 때 사용하는 언어와 태도와 복장이 다르다.
가정과 직장과 교회에서 모습이다 다르다.
남을 의식할 때와 의식하지 않을 때 모습이 다르다.
외식에 가까운 단어가 위선일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민낯과 화장한 얼굴, 화려한 복장 속에 감춰진 실체,
화려한 미사여구 속에 감춰진 진실한 인간성
겉과 속이 같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린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이 더 외식을 많이 한다.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위선할 확률이 높아진다.
지도자일수록 위선의 행동을 할 위험성이 많아진다.
이런 분문을 대할 때마다 떠오르는 단어가 코람데오이다.
인간의 겉과 속을 다 보시는 분 앞에서 ,
나의 적나라한 모습을 꿰뚫고 계시는 분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진실, 진면목, 참 모습, 참 자아가 낱낱이 들어나는 순간이다.
날마다 코람데오의 정신으로 살아가야 한다.
사람의 눈과 머리는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행함이 동반되지 않는 말은 위선적이다.
진정성, 호소력, 감동을 주지 못한다.
작은 일이라도 언행일치의 삶이 가치있는 것이다.
듣고, 말하고, 행하는 것의 삼위일체가 중요하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진실해지도록 노력할 수 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위선적인 삶을 살아도 두렵움 없이 행하게 된다.
성령 하나님
수많은 위선 덩어리인 저를 불상히 여겨주소서.
나를 뒤덮고 있는 가면을 하나씩 벗겨낼 용기와 결단의 마음을 주시옵소서.
진실함으로, 정직함으로, 언행일치의 삶으로 살게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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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을 왜곡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그릇된 길로 오도하는 종교지도자들에게 분노하신다.
바리새인은 식사 전 정결 의식에 관해서는 목숨을 걸면서도, 속마음을 깨끗이 하는 일에는 무뎠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관한 것에 대해서는 열심이었지만,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저버렸다.
율법교사들은 율법보다 더 무거운 조상들의 유전을 백성에게 강요하면서도 정작 자기들은 지키지 않았고,
지식의 열쇠를 갖고 있으면서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는 자들도 막았다.
또한 선지자들을 계승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선지자들을 죽인 조상의 태도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은 누구보다 말씀에 가까이 있었지만,
하나님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삶을 살았다.
그런 지도자가 주께 받을 것은 '상'이나 '복'이 아니라 '화'뿐이다.
바리새인은 이방인과의 접촉을 불편해하고, 식사 전에 손을 씻는 행위로 자신의 깨끗함을 보존하려 했지만,
예수님은 탐욕과 악독함이 가득한 그들의 마음 상태를 꿰뚫어보신다.
겉의 께끗함에 대한 바리새인의 집착이 내면의 더러움을 감추려는 수단임도 간파하셨다.
주님은 우리의 겉만 아니라 속도 만드신 분이시기에 우리의 겉과 속을 모두 보신다.
겉으로 아무리 그럴사한 종교 행위를 실천하더라도 속에 탐식이 가득하면 주님 앞에서 부정하다.
마음에 이웃을 향한 사랑이 있고, 겉으로 이웃과의 나눔이 드러날 때 주님은 깨끗하다 인정하신다.
바리새인은 과시하여 존경을 취할 목적으로 십일조처럼 드러나는 율법 조항만 열심히 지킬뿐,
당장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공의와 사랑은 율법의 근본임에도 소흘히 했다.
더 큰 문제는 평토장한 무덤을 땅인 줄 알고 밟아 부정하게 되듯이,
백성이 종교지도자들의 거짓 경건을 진리인 양 답습하면서 모두가 참 경건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영향력 있는 사람의 위선과 외식은 빠르게 전염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공동체에 외식을 경계하고,
드러나지 않는 속 깊은 헌신을 인정하는 영적 분위기가 필요하다.
억지로 드러내는 신앙이 아니라 중심에서부터 우러나는 신자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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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을 뒤집어놓으시는 예수님 ]
예수님이 의외로 과격하십니다. 사실은 의외가 아닙니다.
복음서를 가만히 살펴보면,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 대해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각을 세우십니다.
대놓고 비난을 하십니다.
오늘도 그리하십니다. 바리새인이 식사 초대를 했습니다.
맘에 들지 않아도 초대해준 데 대해 최소한의 예의(겉치레 예의)는 지켜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들을 도발하십니다. 일부러 그들 앞에서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드십니다.
뻔하게 예상되는 반응이 나타납니다. 눈이 동그래져서 예수님을 쳐다봅니다.
자기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예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냥 집에서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닙니다. 식사에 초대받은 상황입니다.
그러면 초대한 주인 편에서 식사 시중을 들어줍니다.
음식 먹기 전에 손 씻을 물을 가져다 주어서 손을 씻게 합니다.
율법을 철저히 지켰던 바리새인이었으니 더욱더 신경을 썼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드셨습니다. 예수님이 작정하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놀라서 수군대는 바리새인에게 기다렸다는 듯이 예수님이 직격탄을 날리십니다.
“너희는 속에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면서, 겉만 깨끗하면 된다고 생각하는구나!
하나님은 겉만 만드신 분이 아니라, 속도 만드신 분이시니 너희 속을 다 보고 계신다.
그 속에 있는 것들(=욕심)을 긍휼과 자비의 마음에 쏟아 보아라.
그리하면 겉까지도 깨끗해질 것이다. 지금 너희 속은 무덤 속처럼 썩어 악취가 난다”
율법교사가 열 받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예수님께 열 받았습니다.
겉만 멀쩡하고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다는 평가에 분노합니다.
율법교사는 바리새인 중에서도 좀 더 인정받는 사람입니다. 존경받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모욕감을 느낄만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물러서지 않습니다.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드는 그들을 향하여 위선 덩어리라고 욕을 퍼붓습니다.
“그 선지자를 죽인 것이 네 할아버지가 아니냐?
그런데, 네 할아버지가 죽인 선지자의 무덤을 만들어 놓고,
마치 '나는 그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선한 사람'인 체를 하느냐?
그 무덤 앞에서 무릎 꿇고 눈물 흘리며 '나는 선지자를 죽인 살인마의 자식입니다.'라고 자백해야 할 인간이
그 무덤 앞에서 칭찬과 박수를 받고 있느냐?” 이러십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심하게 바리새인들을 비난하실까요?
속은 악한데 겉만 깨끗하게 치장하는 것은,
차라리 겉과 속이 다 더러운 것보다 더 악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속여서 망하는 길로 데려가기 때문입니다(52절).
속이 더러우면 차라리 겉도 더러운 채로 두어야 합니다.
감히 존경받으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존경받는 자리는 가장 위험한 자리입니다.
그가 가는 길, 그가 하는 말, 그가 짓는 표정 하나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사람들이 그를 따라갑니다.
그가 망할 경우, 그것은 자기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차라리 존경받는 자리에 있지 않았다면, 그 자신만 망하는 것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을 심하게 대하시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기를 쓰고 존경받는 자리를 고수하려는 바리새인들을 예수님이 여전히 불쌍히 여기시는가 봅니다.
기를 쓰고 그들의 속을 뒤집어놓으십니다. 그들에게 미움 받아 죽게 될 것 뻔히 아시면서도 그리하십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우리에게는 더욱 우리의 더러운 속을 어떻게든 열어서 보여주시려 하실 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폭로 당하는 것이 복입니다. 속이 시꺼먼 것이 폭로 당해야 합니다. 그래야 속에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속부터 깨끗해져야 합니다. 겉만 깨끗하게 하는 것은 자신이 망하고 남도 망하게 하는, 최고로 악한 짓입니다.
주님, 저의 정체를 폭로하는 일을 계속해 주옵소서.
그래서 존경받지 못하게 만들어 주옵소서.
오직 존경받으실 분은 한 분밖에 없다는 것을 모든 성도가 고백하게 만드시고,
우리가 속부터 깨끗해지는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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