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영성일기

청지기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5. 3. 18. 09:53

본문 : 누가복음 12장 35-48절: 

 

지기 청지기 :양반집에서 잡일을 맡아보거나 시중을 들던 사람. 수청방() 있었다

 

주인이 혼인 집 잔치에 밤새 참석하였다가 자정을 넘어 새벽 사이 어느 시간에 도착했다.

주인이 언제 귀가할지 몰라 밤새 허리띠를 띠고 등불을 켜 놓고 기다리고 있는 청지기는

주인이 집에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문을 열어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때 주님이 하신 말씀이 애사스럽지 않다.

"그 종들은 복이 있다.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 

이어서 도둑이 언제 오는지 알면 대비하고 도둑을 맞지 않는 것처럼

인자도 생각하지 않은 때에 오리라 말씀하신다.

 

베드로가 자신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냐고 묻자

지혜로운 청지기와 어리석은 청지기의 모습에 대하여 말씀해 주신다.

 

밤새 잠도 자지 않고, 복장도 잠옷으로 갈아 입지 않고, 등불을 켜 놓은 채 기다리는 청지기의 자세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청지기의 표상이었다. 

영적인 긴장감을 유지한 채 언젠가 반드시 갑작스럽게 오실 주님을 기다려야 한다.

다 아는 내용이다.

그렇지만 일상의 분주한 삶에 빠져서, 긴 기다림에 지쳐서, 영적인 나태함 때문에

본문을 말씀을 대할 때마다 양심의 찔림을 받지만 얼마나 도전이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혜로운 청지기의 모습이 나에게 있는가 자문해 본다.

장로로써, 교회 리더십을 가진 자로서 성도들을 얼마나 섬기고 있는지 말이다.

재림하실 주님을 얼마나 사모하며, 신부 단장하며, 준비하고 있는지 말이다. 

 

오늘 말씀 중에 주인이 기다리는 종들을 향해 어떻게 하실지에 대한 구절에 시선이 쏠린다.

이 땅에 계실 때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던 주님이셨다. 

청지기는 깨어서 당연히 주인을 기다려야지 하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의무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받을 영광이 있음을 말씀하고 계신다. 

그 영광이 어떠함을 안다면 이 땅에서의 기다림도 넉넉히 감당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청지기가 주인을 기다리는 진짜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보상 때문에?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주인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존경하기 때문이다. 주인이 무엇을 기뻐할 지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밀려오는 졸음도,  지치고 피곤함도 견딜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을, 주님을 사랑함이 우선이다.

주인이 누구신가를 알 때 어떤 힘든 일도 참고 견딜 수 있는 것이다. 

 

성도라면 진실하고 지혜로운 청지기가 다 되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그에 합당한 삶, 종들을 잘 관리하는 수고로움이 있어야 한다. 

때를 따라 양식을 주고 잘 관리해야 하는데,

맡겨진 종들을 박해하고, 종(성도)들이 어찌 되든지 간에 신경쓰지 않고

개인주의적이고 자기 신앙만 챙기며 신앙생활한다면 주님께서 책임을 물으시겠다는 말씀이다. 

 

두려움으로 오늘 말씀을 받으며 내가 청지기라는 위치에 있음을 기억한다.

오늘도 교회와 성도들을 돌보는 일에 소흘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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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면 반드시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재림 약속 이후 아직까지 오시지 않는다고 하여, 그날이 오지 않을 것처럼 살면 안 된다.

그날을 모른다는 것이 그날이 취소되었다고 착각하는 결론으로 이르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구약의 예언대로 오신 주님은 신약의 약속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초림 때와 마찬가지로 재림 때도 섬김을 받으러 함이 아니라 섬기려 오실 것이다.

비유 속 주인처럼 고난과 시련 중에 인내하며 믿음과 충절을 지킨 자기 백성을 

세상이 상상할 수 없는 영광으로 영접해주실 것이다.

세상에서 덜 대접받고 잊힐지언정, 예수님이 기억하시고 갚아주실 삶을 살고 있는가?

 

주님이 믿고 맡기신 사명을 주님이 오실 때까지 충성스럽게 수행하는 제자를

지혜롭고 신실한 청지기로 인정하시고 주님의 나라를 다스리도록 맡기실 것이다.

하지만 주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주인이 준 권한을 자기 이득을 취하는 데 남용한 이들은 엄히 처벌하실 것이다.

 

우리가 주님의 뜻을 아는 분량, 주님의 은혜를 받은 분량에 맞게 기대하시고 심판하신다.

신실하지 못한 청지기처럼 세상 향락에 취해 사명을 맡긴 주인의 뜻을 저버리지 않아야 한다.

어리석은 부차처럼 함께 누리라고 주신 것을 독점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많이 받은 것을 감사하는 데 그치지 말고, 시간과 소유와 은사를 주님의 뜻을 따라 사용해야 한다.

주님의 영광과 이웃의 유익을 위해 살라는 주님의 뜻을 외면한 채,

내게 있는 것을 누리기만 하면서 드리는 감사라면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의 것으로 이웃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자의 지혜로운 삶이다.

주님의 은혜를 사유화해서 그것으로 이웃을 억압한다면 나를 믿고 맡기신 주님을 향한 배신이다.

주님이 내게 무엇을 맡기셨는가? 그것을 어떻게 이웃과 나누는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억하며 늘 깨어 충성된 삶을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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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이 받은 청지기 ]

주인이 종에게 잠을 자지 않고 대기하고 있으라고 명령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종들이 주인이 돌아오기까지 기다리며 잠을 자지 않습니다. 

이경이 되고 삼경이 되었는데도 끝까지 버팁니다.

38절의 이 경, 삼 경은 우리 나라나 중국이 밤(저녁 7시~새벽 5시)을 2시간 간격으로 5구간으로 나누어

5경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과는 다른 구분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야간 시간 구분법입니다. 

로마식으로는 밤을 3시간 간격으로 4구간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이경은 오후 9-12시, 삼경은 새벽 12-3시입니다.

유대식으로는 초경, 이경, 삼경으로 구분하였고 각각 저녁 해질 때-10시, 밤 10-2시, 새벽 2-해뜰 때입니다.

38절의 뉘앙스로 보면 이경은 아주 깊은 밤중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유대식 시간 표시로 보는 것이 맞을 듯합니다. 

종이 저녁 10시, 11시까지 자지 않고 기다리는 것 때문에 감격할 주인은 별로 없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12시까지 자지 않고 기다렸다 해도

 본문에서처럼 주인이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수종들 정도로 감격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1시, 2시가 다 되도록 자지 않고 기다렸다는 뜻입니다.

명령하지도 않았는데 왜 종이 잠을 자지 않고 주인을 기다립니까? 

주인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주인을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할 때 주인이 기뻐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그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 ...” 너무도 가끔씩만 이 찬양을 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시간에 주님 아닌 다른 엉뚱한 것에 마음이 팔려 있습니다.

밤을 새워 기도해 본 적이 언제인지 잘 기억나지도 않습니다.

과연 나는 주님을 사모하며 2시까지 깨어 있는 사람인가...?

예수님께서 살짝 질책하시는 듯합니다.

"내가 다시 올 때 나는 네가 다른 것에 마음 팔려 있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

언제나 어디서나 너의 마음이 나를 향해 있기 원한다.

지금 너의 마음은 어디로 향해 있느냐?"

베드로가 슬쩍 물었습니다. 

"이 말씀, 제자인 우리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인가요? 아님, 모든 사람에게 다 해당되나요?

 너무 어려운 것 같아서 말이지요." 

사도들에게만 해당된다면, 구원에 필수적인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좀 부족해도 괜찮겠지요...?

청지기에게 해당된다고 대답하십니다. 

하나님께 받은 것이 있는 자에게 해당된다고 하십니다. 

다만 많이 받은 자에게 더 많이 해당된다고 하십니다.

물론 적게 받은 자에게도 해당된다고 하십니다.

결국 우리 모두에게 해당된다는 말씀이네요. 

우리 중 하나님께 아무것도 받지 않은 자는 아무도 없으니까요. 

그 정도가 아니라 사실은 하나님께 받지 않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자들이 바로 우리들이지요.

많이 받고 적게 받고는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부를 받은 자는 모두가 많이 받은 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남과 비교하여 자신이 적게 받았다고 생각하며 게으름을 부린다면 

생각하지 않은 때에 주님이 들이닥치는, 당황스러운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빼앗기는 처지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든 적게 받았다고 생각하든, 그 모든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청지기입니다. 모두가 많이 받은 청지기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청지기임을 계속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는 말씀을 주십니다. 

주인의 것을 잘 지키는 삶을 살라고 당부하십니다.

청지기 노릇을 잘 연습한 사람에게

주인의 모든 소유를 맡겨 관리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시면서 당부하십니다.

청지기 노릇 잘 한 사람에게 아들의 권세를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청지기인 것은 맞는데 많이 받은 청지기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은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큰 것입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하지요. 말 한마디의 가치가 그렇게 클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루에도 수백 마디 말을 하는 우리가, 

생물 중에 유일하게 말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우리가, 얼마나 엄청난 것을 받았는지요.

또한 어떤 생물에게도 허락되지 않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다른 인간들과 비교하니까, 내게 없은 것이 있는 인간들에 비교를 하기 시작하니까 

자꾸 내가 적게 받은 것처럼 생각될 뿐입니다. 

우리는, 인간은 절대적으로 엄청난 능력을 받았고 엄청난 기회를 받았습니다. 

심지어 그 기회를 걷어차 버린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우리의 대속물로 주셨습니다.

우리보다 많이 가진 사람들과 비교하지 말고 

우리보다 적게 가진 존재들과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조선시대, 고려시대에 태어난 사람들과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아프리카 오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인간이 아닌 동물들과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개팔자가 상팔자라고 하지만 인간 중에 개가 되고 싶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정말 엄청난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청지기입니다. 

결산의 때는 예고없이 닥칩니다. 

언제나 깨어서 잊어버리지 말고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나누고 섬기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주인의 것으로 나만 먹고 즐기며 노는 것에 쓰지 말고 

친구를 사귀는 일에, 형제를 위로하는 일에 써야 하겠습니다. 

이런 삶이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주인을 기다리는 삶입니다. 

많이 받은 청지기의 마땅한 삶입니다. 

아멘!

[누가복음 16: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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