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영성일기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5. 4. 2. 09:45

본문 : 누가복음 18장 15-30절

 

사람들이 예수님이 어린 아이들을 만져 주시기를 바라고 데려오나 제자들이 꾸짖는다.

그러자 어린 아이들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신다.

 

어떤 관리가 나아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는지 질문한다.

예수님은 십계명 중에서 간은, 살인, 도적질, 거짖 증거, 부모 공경에 대한 계명을 지켜라고 하자

자신은 어릴 적 부터 다 지켰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는데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 주고 나를 따르라 하시자

심히 근심하였다고 한다. 

재물이 있는 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다.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그러자 제자들이 근심하여 자신들은 다 버리고 주를 따랐다고 하자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서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처럼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신다.

어린 아이들의 특성을 잘 이해해야 한다.

무엇을 가르쳐 주면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비춰 판단하고 취사선택하여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순수하게, 순진하게, 전적인 신뢰를 가지고 믿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 갈수록, 늙어갈수록 얼마나 자아중심적이고 고집스러워지는지 모른다.

불완전한 지식과 얕은 경험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한다.

각기 제 길로 간다. 그 길이 사망에 이르는 길인지 분간도 못하면서 고집스럽게 살아간다.

가르쳐 주고 일러주면 깨닫고 돌아와야 하는데

무시한다. 박대한다. 되러 큰소리친다.

자기만 믿고, 자기 마음대로 ,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데로 가겠다고 ...

 

유대인들이 알고 있었던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바꾸지 않고는 받아들일 수 없다.

부는 복의 징표였다. 하나님의 복을 받은 존재라는 증거다.

그러니 당연히 영생을 누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관리는 돈의 걸림돌을 해결하지 못하고 근심하며 떠난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복으로 여겼던 것을 다 버리라고 하는데  가치관이 혼란스럽다.

제자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영생보다 돈을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을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영생을 덜 소중하게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돈을 소유하고도 영생을 얻을 방법을 고민했을까?

이 땅에 살면서 돈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영생의 가치를 알고 지금 소유를 희생하더라도 꼭 붙들어야 할 것으로 여긴다면 포기할 수 있을 것이다.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체중 관리를 위해 음식을 절제하듯이 말이다. 

제자들이 자신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를 따랐다고 하자

현세에서 복을 받을 뿐만아니라 내세에서도 영생을 받으리라고 위로하신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현세적인 복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세속적인 복은 아닐 것이다. 

 

이 땅의 현재형 하나님 나라는 주권의 문제이지 물리적인 가시적인 아니다. 

또한 미래형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자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으로 가는 것이지 

율법을 다 지키고 선한 행위로 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결코 온전히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말이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의 모습 중에서 

순수한, 온전히 신뢰하는, 겸손한 마음이 중요하다. 

날마다 자신의 어떠함을 잊지 말고, 전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주어진 구원을 

감사하면서 살아야 한다. 예수를 믿는 믿음만이 영생을 누리는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복을 받았으니 풍성히 누리고 살아야 한다.  

영생을 소유한 자답게 살아야 한다.

마음의 상태 뿐만아니라 삶도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자답게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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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은 어린아이들을 데려오는 사람들을 꾸짖는다.

예수님의 예루살렘행에 방해가 되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데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천국은 어린아이 같은 자의 것이고,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셨는데도((9:48),

그새 잊은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모르면 나도 들어가지 못하고, 들어가려고 하는 자들도 막아서게 된다.

 

부자 관원은 자신의 흠 없는 삶을 자부하지만,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고 따르라는 예수님의 요구에는 근심하여 떠난다.

그렇게 재물을 선택하고 예수를 포기한다.

영생에 대한 갈증보다 재물에 대한 집착이 더 컸고,

머리 둘 곳 없는 주님을 따르기에는 가진 것이 너무 많았다. 

천국은 자기충족적인 부자보다 절대의존적인 어린아이에게 더 가가이 있다.

 

부자가 부자인 채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

돈의 많고 적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물욕을 버려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도 아니다.

부자 삭개오처럼(19:8) 모든 소유권을 주께 이양해야 한다는 뜻이다.

주님 앞에 소유를 상대화하는 것이 믿음이고 구원의 증표이다

 

제자들은 이 땅의 부를 복의 징표로 여기고, 부자는 하나님의 복을 더 많이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부를 도리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 방해물로 여기신다.

또 제자들은 부자 관원 같은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적격이라고 생각햇지만,

예수를 통해 이뤄질 하나님 나라에 필요한 것은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신뢰, 순종, 소망, 가난한 마음, 정결한 마음이다.

 

주님을 위해 버린 자들에게는 그들이 버린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하게 돌려주실 것이다.

이 세상에서 살 동안 새로운 하늘 가족과 함께 복을 누리며, 내세에도 영생을 누릴 것이다.

'결국 사라질' 영화가 아닌, '결코 사라지지 않을 '천국의 영광을 추구하자.

 

거북한 욕심을 버리고 거룩한 동심을 회복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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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것이 없는 자가 모든 것을 소유한 자가 됩니다 ]


오늘 본문은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는 내용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에 대한 말씀(15-17절)과 부자 관리와의 대담(18-30)입니다. 

두 단락을 한데 묶어 묵상하게 한 것은, 이 두 단락이 동일한 주제를 말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의 단락들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 말씀들이 주어진 시기를 따져볼 때 분명해집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메시아의 사명을 받아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고 

그래서 그 가르침에 일관성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보통 사람들이 알아듣기 힘든 심오한 교훈을 툭툭 던지는 분이 아니십니다.

단지 우리의 선입견, 욕심, 고집이 우리의 눈을 가려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 번만 말씀하시지 않고

같은 주제를 이렇게, 저렇게 예를 바꿔 들어가며 반복하여 말씀하십니다.

특히 17장 11절 이후 22장까지의 가르침은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짧은 기간 동안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제자들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본격적으로 가르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 복음의 핵심을 반복적으로 가르치고 계십니다.

어제 본문의 핵심은 ‘자기에게 근거를 두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근거를 두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앞두고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자기 부인의 믿음, 십자가를 지는 믿음을 보여주며 가르치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도 십자가의 도와 연관된 말씀일 것이 틀림없습니다. 

오늘 말씀의 두 단락 간에는 그러한 연관 관계가 더욱 두드러집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인다는 말씀의 의미를 

예수님과 부자 청년 관원의 사이에 있었던 문답과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통해서 찾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부자 청년 관원에게 하신, 자기에게 있는 것을 다 팔고 예수님을 따르면 하늘의 보화가 있을 것이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씀과 같은 의미입니다.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다고 하신 말씀도 역시 같은 의미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보화’와 충돌하는 듯이 보이는 ‘현세의 여러 배’는 

현세에 받는 하나님 나라의 보화라는 뜻으로 봐야 하는 것이 문맥에 맞습니다. 

‘현세의 여러 배’가 단순히 세속적인 보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조금만 따져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러 배의 내용에는 집뿐만 아니라 아내, 형제, 부모, 자녀가 들어있습니다.

형제나 자녀는 세속에서 여러 배 보상받을 수도 있습니다.

부모님이 늦둥이를 많이 낳아 주시거나, 내가 늦둥이 왕창 낳 복(?)을 받으면 되지요.

아내를 여러 배로 받는 것도 이슬람 국가로 이민을 가면 전혀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부모를 어떻게 여러 배로 보상을 받습니까? 불가능하지요? 아니요,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이것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본문의 어린아이는 자기 것을 주장하지 않는, 자기 것을 모르는, 아주 철 모르는(?) 어린아이를 말합니다. 

부모의 것을 다 자기 것으로 여기고, 자기 것이 하나도 없어도 

부모의 것으로 온전히 만족을 누리는 어린아이를 말합니다. 

‘어린아이’는 자기 부인이 가장 잘 된 상태의 인간을 비유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는 자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는 고백을

아주 쉽게 하는, 철모르는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의 소유자를 말합니다.

이런 믿음의 소유자는 육신의 부모만 자기 부모로 한정하지 않고,

믿음 안에서 많은 부모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믿음 안에서의 부모’란 하나님께서 믿음의 관계,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가족 관계 속에서 만들어주시는 부모를 말합니다.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이 요한에게 어머니를 맡기시면서 “보라 네 어머니라”(요 19:27)고 하신 것은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가족 관계(이 관계는 이미 현세에서 이루어진 관계입니다)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현세에서 이미 이루어졌지만 아직 완성은 되지 않은 나라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자녀는 모든 것을 소유한 자입니다. 

이에 반해 부자 청년은 하나님의 것을 자기 것으로 여기지 못하고,

자기 손에 들어온 것만 자기 것으로 여기는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자기 것으로 여겨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 것을 자기 손에 따로 챙겨야 만족하는 자였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 아버지의 것인 예루살렘 교회의 모든 재산을 

자기 것으로-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사용하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교회의 모든 어머니가 그의 어머니였고, 그의 형제는 수만 명에 달하였습니다. 

요한 사도는 요한 서신에서 말마다 “자녀들아”를 연발하고 있습니다.

빈말이 아니고, 진짜로 그의 편지를 받는 성도들이 그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얼마든지 교회의 재산을 마음대로 쓰도록 맡기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는 내 것이 없습니다. 내 어머니가 따로 없고, 내 새끼가 따로 없습니다. 

‘내 것’을 주장하지 않는 믿음이 ‘자기 부인’의 믿음입니다. 

내 자존심, 내 명예, 내 체면이 없어진 사람이 참된 믿음의 사람입니다. 

내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의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참 믿음의 사람입니다.

이렇게 온전한 자기 부인의 믿음을 가진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온전히 주어집니다. 

그래서 내 것이 없는 자가 모든 것을 소유한 자가 됩니다. 

십자가로 영생의 부활에 이르고, 자기 부인으로 영원한 영광에 이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자기를 부인할 수 있는 믿음, 내 것이 없이 오직 은혜만을 붙드는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기대하십니다

이 믿음 있는 자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습니다. 하나님의 왕권을 상속받습니다.

이 믿음 쉽지 않지요

거의 모두가 부자가 된, 모두가 자기주장을 내세우는,잘나지 않은 사람이 없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거의 불가능하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신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 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하십니다(27절). 

이 말씀 붙들고 나아갑니다. 이런 믿음 만들어주시기를 구하고 구하며 말씀을 듣습니다.

주 하나님, 내 것을 버리고 온전히 예수님을 좇는 자 되기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녀의 권세 가진 자 되기를 원합니다. 

갓난아이같이 엄마, 아빠의 모든 것으로 만족하고 즐거워하는 믿음의 소유자 되기를 원합니다.

따로 내 것을 챙겨놓아야 마음이 놓이는 어리석은 상태에서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우리 아버지는 부자야. 우리 아버지는 최고야.”

내 형편이 갓난아이 같든지 걸인 같든지 상관없이 이 고백을 하면서

즐거워하고 만족하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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