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영성일기 111

거짓 예언

본문 : 예레미야 27장 12-22절 예레미야는 시드기야 왕에게 바벨론에 항복을 권한다.그렇지 않으면 여호와가 명하신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리라고 말한다.무엇이 생명을 보전하는 현명한 방법인가?친바벨론적인 이 발언이 보수적, 극우적, 애국적 집단에게 어떻게 들렸을까?이 나라도 친일파의 목소리가 거센 적이 있었다. 지금도 친미적 성향이 강한 집단이 큰 목소리를 낸다. 진정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었던가?빼앗긴 성전의 기구들이 조만간 돌아오고 바벨론의 위협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희망적인 목소리를 냈다.사람은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소리에 귀를 더 기울이는 경향이 많다.물론 선지자는 평화의 시대에 고난을, 고난의 시대에는 희망을 외쳐야 한다.."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니..

예레미야의 퍼포먼스

본문 : 례레미야 27장 1-11절 바벨론 느부갓네살이 B.C.593년 유다를 침범하여 많은 포로들을 잡아갔다. 여호와김의 아들 여호와긴(여고니야) 왕을 폐위하고, 시드기야를 꼭두각시 왕으로 세워놓았다.하지만 시드기야는 주변의 작은 나라들(에돔, 모압, 암몬, 두로, 시돈) 의 사신들을예루살렘으로 불러 바벨론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길을 모의한다. 바로 그때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멍에를 만들어 목에 걸고 그 멍에를 사신들에게도 나눠주라고 하신다.주인이 동물에게 멍에를 씌워 가축으로 길들이듯,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그들을 항복시키고 자신의 통제 아래 둘 것이라는 '상징 행동'이다.하나님은 그 나라들과 백성들과 거기 속한 짐승까지 모두 느부갓네살에게 넘기기로 결정하셨다.예나 지금이나 모든 역사는 권력자들의 합의..

예레미야의 변호자들

본문 :  예레미야 26장 16-24절 고관들과 백성들이 제사장과 선지자들에게 이의를 제기한다."이 사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말하였으니죽일 만한 이유가 없느니라."그러자 그지방의 장로 중 몇 사람이 일어나 백성의 온 회중에게 말한다."유다 왕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가 유다의 모든 백성에게 예언하여 이르되"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시온은 밭 같이 경작지가 될 것이며예루살렘은 돌 무더기가 되며이 성전의 산은 산당의 숲과 같이 되리라 하였으나유다의 왕 히스기야와 모든 유다가 그를 죽였느냐히스기야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언한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셨느냐우리가 이같이 하면 우리의 생명을 스스로 심히 해롭게 하는 것이..

다시 예레미야서로

본문  : 예레미야 26장 1-15절 25장은 느부갓네살이 집권한 해인 주전 605년에 이메시지를 전했다.예언자는 70년 간의 포로 생활이 시작되기 20년 전에 그 일을 예언했다. 26장의 사건은 25장의 사건이 일어나기 전 주전 609-608년에 일어났다.물질주의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왕 여호와김은 무고한 백성을 박해하고 죽였다.26장은 예레미야가 재판을 받게 된 이유이다. 요시야의 아들 여호와김의 시대에 예레미야를 통해 심판을 선언하신다.우상을 타파하고 백성을 다시 하나님의 길로 인도했던 요시아가 사망하자,유다 백성은 기다렸다는 듯 다시 부정과 불의로 되돌아갔다.이렇듯 '죄 죽이는 일'(롬 8:13)에 소흘하면, '죄가 우는 사자같이 '(벧전 5:8) 우리를 삼킬 것이다.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이다..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

본문 : 사도행전  27장 21-44절 이제 사도행전도 끝이 다가온다.바울의 풍랑을 만나 표류하는 마지막 장면이다.배가 표류한지도 14일이 경과되었다.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심리 상태는 어떠했을까?아마도 구조에 대한 희망이 점점 사라져가고 절망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바울은 절망의 사람들에게 안심하라고 말한다.전날 밤 하나님의 사자가 찾아와 그의 사명을 다시금 확인해주시며그와 동행한 모든 이의 안전을 약속하셨기 때문이다.바울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모든 일이 되리라고 믿었다.그의 삶에 하나님의 말씀이 틀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하나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으시다. 그러니 말씀을 따르는 인생도 틀림이 없다. 신앙생활하면서 말씀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고난 앞에서 흔들리고 무너지고 만다.우리가..

아그립바 왕 앞에서의 변론

본문 : 사도행전 26장 1 ~ 32절 베니게가 함께 온 분봉왕 아그립바 2세와 신임 총독 베스도 앞에서아그립바가 바울에게 변호의 기회를 준다. 바울은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에 정통했던 아그립바 왕에게변론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자신의 말을 경청해 줄 것을 요청한다.이는 벨릭스에게 바울을 고소했던 변호사 더둘로의 아첨과는 완전히 다른 말이다.더둘로는 없는 말을 만들어 아첨함으로 사람을 조종하려는 마음에서 말을 했지만,바울은 사실에 입각해 칭찬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정중히 부탁한다.우리 말에도 거짓이 없어야 한다. 거짓을 곁들여 자기 유익을 구하지 말아야 한다.선하고 정직한 말로 사람을 세워주고, 담대한 복음 증거로 세상을 구원하는 입술을 가져야 한다.진실한 말에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

베스도의 고민

본문 : 사도행존 25장 13-27절 베스도가 총독으로 부임하면서 죄수 한 명을 인계 받는다.부임 삼 일 후에 예수살렘에 가자 유대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몇 사람이 바울을 고소한다.그리고 바울으로 예루살렘에서 옮겨 재판 받도록 요구한다.그러나 베스도는 다시 가이사랴로 내려가야 하고 필요하면 내려와 고소하라고 지시한다. 그들이 변호사를 대동하고 내려와 고소하지만 로마인 총독의 입장에서 볼 때특별한 범죄 사항이 아니라 단지 종교적인 문제로만 보인다.그런데 바울이 가이사에게 항소를 하면서 재판은 중단되고 구속 상태로 있었다.   마침 아그립바 2세와 아그립바 1세의 장녀 베니게가 신임 총독을 예방한 것이다.그러자 베스도가 자신의 고민거리인 바울 사건에 대하여 자문을 구한다. 자신이 보기에 특별한 범법 ..

돌파

본문 : 사도행전 21장 37절 -22장 11절 바울 사도는 천부장에게 끌려 영내로 들어가다가 말할 기회를 구한다.헬라어로 청하는 바울의 지혜를 본다.천부장이 무시하지 않고 긴장하는 모습이 느껴진다. 복음을 반대하던 유대인 사울의 자신의 과거를 증언하고,다메섹 도상에서 핍박하던 나사렛 예수를 만난 체험을 이야기한다.당시 일반적으로 아람어를 사용했는데 히브리어로 말함은더 친숙함으로 다가가고자 한 바울의 의도를 본다. 예수님을 가감 없이 증언할 수 있는 선명한 경험을 주신다.바울의 회심 사건은 사도행전에만 세 번 기록되어 있다.바울에게는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을 것이다.그랬기에 자신을 변호하고 예수님을 증언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마다그 일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증언은 사실을 진술하는 것으로, 결코 ..

사명자의 삶

본문 : 사도행전 20장 17-27절 배가 잠시 밀레도에서 수화물을 싣기 위해  며칠 정박해 있는 동안사람을 에베소에 보내 장로들을 청한다.바울이 떠난 사이에 유대인들이 바울에 대한 오해를 심어 주었기 때문에 해명할 필요를 느낀 것이다.자신을 모함한 모든 사안에 일일이 설명하기 보다는지난 날 자신의 사역과 삶에 대하여 회고하면서에베소 성도들이 목격한 자기 삶을 증거로 내세워 변호한다.진실한 삶이야말로 가장 힘 있는 증거이기 때문이다.겸손과 눈물로 인내해온 시간이 있다면, 오해와 편견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말이 칼보다 예리할 때가 있지만, 삶으로 보여준 것은 백 마디 말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다.오해를 불식시킬 삶의 증거, 사랑과 온유와 인내가 내게 있는가? 백문이 불여일견이요, 백견이 불여일행이라.'..

유두고가 살아나다

본문 : 사도행전 20장 1-16절 에베소에서의 소요가 진정되자 바울은 마케도냐로 건너간다.마케도냐의 빌립보,데살로니가, 베뢰아 교회들을 방문하고 헬라(아가야)에서 3개월을 머문 뒤 배를 타고 수리아로 건너가고자 했다.그러나 살해 위협 소식이 전해지자 육로를 통해 다시 마케도냐로 올라가 빌립보에서 드로아로 건너갔다.그리고 앗소 - 미둘레네 - 기오 - 사모 - 밀레도 - 예루살렘행으로 이어지는 여정을 밟는다.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기 전에 제자들을 불러 권했고(위로하다, 격려하다), 마케도냐의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리아 교회들도 방문하여 권했다.주님의 제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그들의 믿음을 촉진하는 것도 바울의 중요한 사명이었다.이 목적을 위해 바울이 사용한 수단은 다름 아닌 '여러 말'이었다.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