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영성일기

제자도

톨레 네움 에트 톨레 데움 2025. 3. 24. 09:15

본문 :누가복음 14장 25-35절

 

예수님은 계속해서 자신을 따르는 일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나의 제자는 이런 자들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무리를 향해 정말 자신을 따라올 것인지 묻는다.

 

"무릇 내게 오는 자는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불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이 말을 들은 무리들은 어덯게 되었을까?

 

이어서 제자도의 삶에 대하여 잘 생각해보고 결정하라고 하신다.

마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 때 준공할때까지 비용을 정확하게 계산하지 못하고 공사를 시작하다가 중단한다면

비웃음을 받을 것이고, 숫적 열쇠의 적은 병사를 거느리고 전쟁하러 나가는 임금이

적군의 전력에 대적할 자신이 없으면 미리 나가서 화친하는 것이 현명한 것처럼

누구든지 자신의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소유는 무엇일까?

재산, 목숨, 명예, 권력, 지위.....

 

소금이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려면 소금 고유의 짠 맛을 간직해야 한다.  

예수의 제자가 되려면 제자다운 삶을 살아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일까?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은 다 예수님의 제자되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제자가 되기 위해서 포기하고 각오하고 결단하는 삶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제자에게서 소금의 짠맛이 나겠는가?

결국은 지적인 앎을 넘어 몸으로, 삶으로 행동하고 실천하는 모습이 뒤따라야만 한다. 

언행일치의 삶만이 진정한 감동과 호소력과 영향력이 있는 모습이다. 

야고보 사도의 말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일 뿐이다.

제자도의  걷는 길은 좁은 길이며, 제자가 되는 것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잘 생각해보고 결정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제자는 되고 싶지만 좁은 문, 좁은 기로 가는 길은 원하지 않는다.

편리성을 추구하는 현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들도 쉬운 편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한다. 

 

오늘 주님이 말씀하시는 제자도의 말씀이 얼마나 도전으로 다가올 지 의문이다.

나 또한 12사도들이 걸었던 길을 갈 자신이 없다.  

내가 붙들고 포기하지 않으려는 소유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성령님, 주님의 제자 되기 원합니다.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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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더 많은 추종자가 아니라 진정한 제자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따른다는 것이 어떠한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것인지 말씀해주신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심자가를 지고, 세상 명예와 재물을 포기할 수 있어야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될 수 있다고 하신다.

분위기에 편승해서 충동적으로 제자가 되는 것으로는 제자의길을 걸을 수 없다.

그러니 대가를 냉정하게 계산하고 진지하게 결단하라고 촉구하신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에게 요구되는 세 가지 덕목이 있다.

혈육에 메이지 않는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를 질 수 있는(죽음을 각오하는) 결단,

이 세상의 물질과 명예에 대한 포기이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면 병 고침을 받고 풍족함을 누리며, 다른 사람들보다 더 편안한 삶을 살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잘못 계산한 것이다.

오히려 이 땅에서 포기하고 비우고 버리는 것이 많음으로 인해 형편이 어려워질 수 있다.

얻을 영광만 계산하기보다 내가 잃게 될 부분까지 헤아려보고 도 제자의 길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복음을 믿고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따르는 것이 성도의 복음이다.

여기에는 혈연보다 크고 생명보다 중요하며 재물보다 영화로운 그 무엇이 있다.

최상의 보화를 발견한 상인이 자신의 재산을 다 팔아 진주를 사게 만들고,

밭에 감춰진 보화를 발견한 농부가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사게 만드는 것 같은 절대적 가치가 있다.

그 복, 그 가치르 ㄹ발견한 사람만이 제자가 될 수 있다.

 

소금의 생명은 짠맛에 있다.

그 어떤 재료에 섞여도 본래의 맛을 잃지 않는 짠맛이 없다면 소금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같이 제자의 생명은 제자다움에 있다.

세상 어디에 있어도 그리스도인다움이 살아 있어야  그 맛과 영향력을 흘러가게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세상에 하나님 나라의 향과 맛을 낼 수 았는 그리스도인다움이 있는가?

 

주님의 나라와 그 뜻을 삶의 우선순위로 삼고 살도록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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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산의 끝은? ]

자기 소유를 적당히 챙기면서 예수님 잘 믿을 수 있다는 생각에 경종을 울리십니다. 

전도하러 오셨다는 예수님께서 따르는 수많은 무리에게 찬물을 끼얹으십니다. 

“자기 십자가를 질 생각이 없는 사람은, 일찌감치 나를 떠나라.”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오늘 본문의 첫머리와 마지막 부분에서 동일한 말씀이 나타납니다. 

26절의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와 

33절의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입니다.

반복되는 말씀은 중요한 말씀입니다. 

더구나 반복되는 부분이 첫머리와 끝이면 그 부분이 내용의 전부라는 의미입니다. 

목숨을 포함해서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말씀이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이런 말씀을 첫머리와 끝에 주시면서

 중간에 과연 그럴 수 있는지, 과연 그렇게 해서라도 예수님 따르는 것이 이익인지 

계산해 보라는 권면의 말씀이 주어졌습니다(28-32절).

깊이 따져보지도 않고 ‘난 할 수 있어!’라는 자기 최면으로 예수님 따르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망상입니다. 

따져보라고 하십니다. 무조건 예수 믿겠다고 따라나서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 믿으면 복을 받고 좋은 이웃도 사귀고 어려울 때 위로의 말씀을 통해 힘도 얻을 수 있다며 

예수 믿기를 권하지 말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교회에 들어온 자들이 다수가 되면 교회가 망가집니다.

예수님의 이 권면의 진의는 무엇일까요? 

계산해 보고 확실히 가능하다고 판단된 후 예수님을 따르라는 뜻일까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으면 따르지 말라는 뜻일까요?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는 자질이나 능력이 없습니다.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며 예수님을 따를 결단력이 내게는 없습니다. 

내 모든 소유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를 믿음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노력하고 애쓴다고 없는 결단력,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계산해 보라는 말씀의 진짜 뜻은 계산해서 되겠다 싶으면 따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도저히 안 된다고 계산하여 포기하라는 말씀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충분히 계산해 본 후 도저히 안 된다는 결론에 일단 이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계산 후 내 노력으로는 도저히 못 한다는 결론에 이르러야

비로소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을 준비가 되는 것이기에 이리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는 무조건 항복으로 화친을 요청해야 한다고 권면하고 계십니다(32절).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계산을 통해서 유일한 한 길 찾기를 원하십니다. 

나로서는 도저히 안 되니 주 예수님 앞에 엎어져 무조건적인 은혜를 구걸하는 길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본질입니다. 

믿음조차도 내 결심, 내 결단, 내 노력으로 되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믿음의 길이 시작됩니다. 

곧 자기 부인입니다. 

계산 끝에, 안 된다는 결론 끝에 꺾이는 것입니다. 

자기를 채워 무엇인가를 이루는 길과는 정반대의 길, 자기 부인입니다.

그것은 소금의 길입니다. 

소금은 자기를 녹여 맛을 냅니다. 

소금이 녹기를 거부하면, 무슨 방법으로도 짠맛을 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도(?) 하실 수가 없는 일입니다.

계산해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예수님을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제대로 계산해 보지 않았기에 내린 결론일 뿐입니다.

제대로 계산해서 도저히 안 된다는 결론이 날 때 포기하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포기하면 영멸이니, 포기할 수 없습니다. 도저히 안 된다는 결론으로 예수님께 애걸해야 합니다. 화친을 애걸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 믿음의 길입니다. 

주님, 계산 제대로 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그래서 절대로 내 능력과 노력으로 예수님 따를 수 없음을 자백하며 믿음의 길 굳게 붙들게 하옵소서. 

계산하지도 않고 ‘할 수 있다!’를 외치며 무조건 따르다가 절벽에 떨어져 끝장나버리는 바보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철저한 계산, 제대로 된 계산을 하여 예수님께 납작 엎드리는 길로 가게 하옵소서. 

오직 믿음의 길에 굴복하게 만드는 시간이 내게 차곡차곡 쌓이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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